2024년 7월 읽고 싶은 책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 있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조지아 오키프는 우리에게는 없는 미덕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멈춰 있다. 그녀는 영구적이다. 그 주변으로는 그녀의 성스러운 아름다움과(옛말에서 성스럽다Sacred는 단어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이었다) 지루하고 평범한 세속의 영역을 분리하는 액자가 둘러져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중략) 손 틈새로 금세 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는 아니어도 전시를 종종 챙겨 보러 간다.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모네나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다. 하지만 누군가 미술을 좋아하냐고 묻거나, 전시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썩 시원하게 답을 못하겠다. 그런 물음에 답하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할 것만 같아서다. 그런 마음이 하나둘 모여 나는 미술관에 가면 원하는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유를 잃고, 그림을 통해 반드시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강박과도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브링리가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더 멧)의 경비원으로 10년간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오랫동안 더 멧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곳의 구석구석, 말단에 있는 신경까지도 그의 발걸음이 닿았을 테다.
그는 친형을 갑작스러운 병으로 잃고, ‘뉴요커’라는 꿈의 직장을 뒤로 한 채 더 멧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어릴 적 가족과 추억이 담긴 장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그가 느낀 소회,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만났던 사람과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설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한국판 제목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떠오르는 긴 제목이지만, 이 책의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이다. 한국어로 직독직해하자면 ‘세상의 모든 미’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멧이야 말로 그 모든 미가 담겨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유명한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인지와 느낌, 감동이라 말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므로 어떤 균일한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저자가 한 인터뷰를 보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독서는 유사한 방식으로 하지만 미술관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관람한다고 말한다. 즉, 선형적 체험이 아니라는 거다. 예술품과 맺는 관계는 상호작용이고 그때 나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결국, 예술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삶을 이해하려는 인류의 노력이고, 나만 겪은 고통이 아니라 많은 이가 겪은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 경험을 절실히 한 사람이 바로 저자였다. 형을 잃은 고통에 갑작스레 미술관의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그건 저자에게 일종의 치유의 과정이었다. 가장 어릴 적 추억이 많았고, 저자와 비슷한 상황의 그림을 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
저자는 경비원으로서 근무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와 어울리게 된다. 아무래도 특정 직종의 경우 유사한 배경의 사람이 모이게 돼서 우물 속 개구리처럼 갇히게 된다. 그러나 경비원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지고,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음을 기억하고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끔 한다.
그는 10년 간의 경비 생활을 하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에 대한 지식을 쌓고, 그것을 관람객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이런 경비원을 만났다면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거 같다. 동시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도서관에서 무언가를 묻는 사람에게 단순히 답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도서관에 대해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하는 사서. 아마 쉽지는 않겠지만 이 책의 저자를 보고 나 역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 덕에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미술 사조가 어떻고,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보고, 그걸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상술하는 것도 예술 작품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 매몰된 나머지 무언가를 느껴야만 하고,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가끔은 작가처럼 그냥 작품을 여러 번 바라보는 여유를 갖고 싶다. 작품이 내게 하는 말이 무엇인지 고요하게 들어보고, 그것을 소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 남에게 내가 이만큼이나 느꼈다고 ‘인증’하는 것보다 내 안을 향하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미술을 좋아한다거나, 전시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