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읽고 싶은 책 |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김영화)
작년 겨울, 혼자서 “나의 올드 오크”라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노장 감독인 켄 로치의 작품으로, 영국의 한 폐광촌에 시리아 난민이 이주하며 기존 주민들과 겪게 되는 갈등과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연대를 그렸다. 나름의 결론을 마음 속으로 내며 훌륭한 영화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왔는데, 정작 그때는 잊고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당시 울산으로 이주하게 된 아프간 특별기여자와 기존 울산 주민들의 1년간을 담은 책이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이다.
“시사IN” 기자인 저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를 담은 게 아니라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아프간에서 갑작스레 한국으로 오게 된 아프간 특별기여자 가족과 그들이 일하게 된 현대중공업의 책임, 이주를 반대하던 주민과 그들을 환영하던 이들, 울산시 공무원, 교육감, 통역사, 다문화센터장, 사회복지사… 그 어떤 사람도 ‘악역’으로 담지 않은 저자의 다정한 시선과 더불어 친숙한 문체는 각자의 이야기에 쉽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이의 삶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이게 바로 책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해볼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할 만한 토대가 마련되니 감정적으로도 쉽게 빠져들었다. 특히 많이들 알고 있을 울산 노옥희 교육감과 아미나(가명)의 첫 등교 사진, 이 사진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다. 당시 사진만 보고도 감동을 하였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이의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이는 결국 우리 같은 사람 한 명 한 명이었다. 난민을 책으로, SNS로, 뉴스 기사로 멀리서 바라볼 때는 나는 상황을 다 이해하고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만약 내 앞에 난민을 지원하는 일이 당장 떨어졌다면 이 책에 나온 이들처럼 적극적인 행정을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반대하는 이들의 시선도 무섭고 겁도 많이 났을 것 같다. 그래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용기를 냈던 이들이 존경스러웠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는 함께 밥을 먹으며 기존 주민과 난민의 깊어진 골을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어른들은 편견을 가지고 난민을 바라보지만, 아이들은 함께 뛰어놀며 오히려 빨리 친해지기도 한다. 사실 직접 얼굴을 보고 함께 부대끼면 나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서 나오는 반대 의견을 가졌던 주민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고백한다. 역시 온라인에서 쉽게 퍼져나가는 혐오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것이 ‘미래를 먼저 경험’했던 이들 덕에 얻을 수 있었던 나침반 아닐까.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