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두 시 반] 23회
1980년 12월. 백기완 시집 <젊은 날>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묏 비나리'는 백기완이 1980년 12월에 쓴 긴 장시이다.
우리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백기완을 많이 기억하지만 젊었을 때 체격이 좋았다.
백기완 선생을 보좌했던 분께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의 젊었을 때 일화가 참 많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 당시 선생은 5 공화국 출범과 함께 이루어진 대대적인 민주인사 탄압 (계엄법 위반)으로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게 된다. 들어갈 때 몸무게가 80kg였는데
나올 때는 40kg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살아서는 이곳을 못 나가고 나는 여기 까지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쓴 시가 묏 비나리이다.
비나리는 뭔가 빈다는 뜻으로 비는 행위, 즉 '~위한 기원' 기원한다는 뜻.
묏은 우두머리의 뜻도 있지만 우리 강산의 의미에 가까울 것 같다.
우리 강산에 드리는 기도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80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들불야학 동료 박귀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극 <넋풀이>에 삽입된 합창곡이었다.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았던 김종률이 작곡을 하고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개사하였다. 창을 이불로 가리고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했다고 한다.
맨 첫발
딱 한 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 발 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중략-------------
젊은 춤꾼이여,
딱 한 발 띠기에 인생을 걸어라.
작곡가 김동률은 밝고 힘차게 부르길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 가나니를 나가니로 개사하였는데
지금은 다시 원곡대로 돌려놓았다.
가나니...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는 뜻이 아니고, 나는 가지만 산자들이여 계속 전진하라는 의미이다.
가나니나 나가니가 뭐가 중요하냐 물을 수도 있지만 올해의 대한민국은 여느 해와 다른 일들을 겪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소년이 온다를 이야기 하면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왜 소년이 온다'라고 하였을까?
현재의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도왔다.
12월 3일 그 날밤, 소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