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지옥같이 싸우던 부모가 있었다. 지긋지긋했지만 그들이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두려워졌다. 이쯤이면 폭발할 시간인데 왜 부모님이 싸우지 않지? 동생과 나는 부모님이 싸운 날을 달력에 체크하며 이 날 쯤엔 다시 전쟁이 올 거라 이야기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자며 손을 꼭 잡았다. 그날은 동생, 아니면 내 생일이기도 했고 결혼기념일 일 때도 있었다. 나도 지병이나 마찬가지인 정신증과 조울이 심해지면 방 한 구석에서 죽겠다고 부엌칼을 품에 안고 웅크리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위협을 하는 날도 있었다.
어느 밤 엄마는 거실에 서 있었고 무언가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점점 늘어지며 술 취한 것같이 이야기하더니 기절해버려서, 급히 119를 불렀다. 희귀성 난치병을 앓으며 처방받은 독한 약을 한꺼번에 섞어 삼켰다고 했다. 아버지의 모멸찬 눈빛을 씹어 삼키고 대학병원으로 달렸는데 방법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너는 참 특별한 아이야. 잊어버리지 마."
라고 천천히 말하고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더 좋은 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가는 동안, 과속으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도착한 큰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고 장례식장에서는 빨리 예약을 해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시간에 가실 수 있다고 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20프로도 채 안된다고 했다. 몸에 구멍을 뚫고 해독제를 계속 주사하고 있었지만 미래가 없는 밤이었다. 3일째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새벽에 식은 도시락을 먹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놀랐지만 배가 고팠다.
엄마. 엄마가 없어도 밥을 지을게
매일매일 나물을 무쳐 반찬을 하고
옆에 없어도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할게
혼자서 두 명분의 약속을 하고 깜빡 잠이 든 밤, 악몽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는데 엄마가 눈을 뜨고 있었다. 손끝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의사에게 달려가 엄마가 깨어났다고 말했다. 새벽이 열릴 무렵 엄마의 몸도 조금씩 열렸다. 울지도 못했다.
눈을 뜨고 엄마는 조금씩 말도 하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가 이야기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천명이라고. 매일매일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대소변을 받아내도 동생과 나는 매일 기뻤다. 평생을 이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1주일 뒤, 엄마는 거짓말처럼 걸어서 퇴원을 했다.
가끔 꿈을 꾼다. 아닌 것처럼 살고 참인 것처럼 죽는 꿈. 그리고 다시 살아나고...
또다시 걷기 시작하고 대화를 하고 웃고 그런, 모든 것들.
엄마와 나는 가끔 서로의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것들을 찾아보곤 한다.
그 사진들은 언제나 웃고 있다.
사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러나 죽음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