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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 Aug 13. 2022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신림동 반지하방이었다. 집이라는 표현도 이상한 단칸의 창고. 창도 손바닥만 해서 그곳으로만 빛을 보던 나는 사시를 앓게 되었고 수술은 했지만 지금도 눈이 약하다. 부모님은 내가 기어가는 바퀴벌레에 손짓하며 친구를 삼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방엔 배수구가 없었다.


배수구가 없는 반지하방은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 때문에 망가지기 시작했다. 지겹게 비는 쏟아졌고 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혼자서 사투를 벌이며 이를 악물고 빗물을 퍼내며 엉엉 울었다고 했다. 살아갈지, 아니면 포기할지. 삶의 방향이 여름마다 반복되는 곳, 그런 곳이 반지하방이다.


서초동 그 아파트에 물이 줄줄 내려오는 것과, 신림동 반지하방에 물이 들이치는 것이 어떻게 공평하단 말인가. 집기와 가구를 새로 바꾸는 삶과 생과 사를 영영 바꾸는 삶. 얼마나 버겁고 두려웠을까. 그들의 명복을 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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