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빛의 너울거림을 보면 눈을 깜빡일 때마다 환하게 마음이 차오르곤 했었다. 보이는 것은 가득한 빛의 솟구침. 눈이 가느스름하게 감기는 중에도 온몸으로 반짝임을 받아낸다.
그러나
이제는 빛의 사라짐 이후를 말할 것이다
불빛이 사그라들면 남은 연기는 흔들흔들 안녕이라는 인사. 하늘로 올라가는 회색을 마냥 바라만 본다.
아이로 돌아간다면 그 매캐한 것을 손에 쥐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두 눈을 그어버리던 불의 끝은 언제나 또 다른 빛의 가능성.
어쩌면 다음 불꽃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어 할 수도 있었겠지
물처럼 넘쳐흐르던 시간이 얼어붙고 이젠 내일 이후가 두려워 불꽃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늘에만 있는 나무는 더 자라지 않았고 바닥을 기는 몸뚱이엔 두려움만이.
희망을 노래하던 열매는 내 손으로 따 짓이겼고
이제는 패배를 기꺼워하는 사람
꽃을 피워낼 수 없다면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노파같이 시든 낯으로 중얼거린다
명백한 의심이 독사처럼 스르르 기어 왔으니
사는 것은 왜 의심뿐인가 나는 왜 스스로를 더 의심하게 되었나 조잡한 두려움을 건너보니 전부 모든 이유가 나였을 때, 잠자고 있던 나의 불행이 불꽃처럼 터져 나올 때 중얼대고 마는 것이다.
겨울 꽃이 할 일은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오기 전에 얼어 죽는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