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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것들 Oct 16. 2021

억울함 보다는 사랑을 앞세워.

written by.김해피

야 진짜 세상에 억울할 것도 참 많다. 하다 하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까지 억울해 미칠 지경이라니, 스스로를 믿지 못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형편없이 느껴졌다. 아주 중요한 타이밍의 한가운데서 어떤 길을 택할지 나침반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동쪽을 보면 전문 기술직으로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가족들이 있었고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무슨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가 서쪽을 보니 친구들이 대학원으로 전문 지식을 키우고 있었고 어느새 검색창에 ‘OO대 석사과정’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고 있었다. 학업 4년도 길다고 조기졸업 바라보던 내게 공부는 아직 어렵겠다 싶어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려 할 즈음 일이 많아진 관계로 FAIL.


그렇게 한동안 김쩐지를 붙잡고 나는 뭘 해 먹고살 것인가, 앞으로 뭘 배워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앞으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알맹이 없는 물음표를 타고 급발진하다가 결국엔 아직 여기에 미련이 많이 남았다며 급정거하고는 핸들에 코 박고 괴로워했다지.


이 일을 찰떡같이 믿었던 과거의 내 선택이, 열심히 살았는데 괴로워 고민하고 있는 내가, 이 세상이, 부조리한 노동 사회가, 너무너무 억울하고 다른 일 하고 싶다며 요리조리 핵심만 잘 피해 큰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다 마침내 거대한 미련이라는 벽 앞에 무너졌다.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는 물러날 수 없다는 청승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여태까지 억울하다고 돌려 까기 했던 것들은 사실 죄가 없다는 것을, 사실 정말로 억울한 것은 내가 이토록 사랑한 모든 일을 겨우 여기에서 자발적으로 멈추려 한다는 것에 있음을 안다. 후회광공 재질 늙은이로 나이 들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는 내가 나를 더욱 적극적으로 높이 비행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 '어머, 김해피 저 인간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이대로 돌아서기에는 미련이 남는다는 거여?' 물론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자랑하고 싶으면 마음껏 자랑하고, 재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겨주기로 마음먹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 하여 나에게 나를 납득시키기로. 그동안 어디서 어떤 황홀한 경험을 했고, 지금은 또 얼마나 대단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자랑하고 가끔 칭찬도 받기로 했다. 강조함에 모자람이 없는, 우아한 N잡것의 덕목은 ‘다정함’이므로 억울함보다는 사랑을 앞세워 가장 먼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해 다정해지겠다는 말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김쩐지와 내가 N잡것들로 노모어잡클럽을 일단 '시작'한 것을 기특히 여기며 9월 27일 하루를 열고 마무리 하는 것만으로 오늘은 우선 성공이다.

님들, 김해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님들은 스스로에게 한 번이라도 다정한 사람이었느냐….



2017년, 나의 외롭고 아름다운 첫 일터

김해피

도처에 널린 행복을 잘 주워 먹고, 외부 자극에 타격이 없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 매일 아침 막내 삼촌의 트럼펫 부는 소리에 춤을 추던 아이는 강원도 시골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눈을 떴다. 광고홍보와 문화콘텐츠를 전공한 후 2017년 아시아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에서 홍보팀 인턴으로 업계 생존력을 끌어올렸다. 이후 2019년부터 국내외 정상급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있는 기획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멋진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모든 온오프라인 홍보물 디자인, SNS 관리, 공연 브랜딩, 굿즈 디자인, 아티스트 매니징, 공연 A to Z, 협력 업체 커뮤니케이션, 각종 현장 동행 등을 도맡아 한다. 직업은 하나인데 여러 일을 하게 된 N잡것의 품위 유지를 위해 밭일과 요리까지 발을 넓힌 지도 7년째. 다정한 삶의 바구니에 음악, 공연, 농사, 요리, 이제는 글쓰기까지 모두 담으면 그것으로 완벽한 김해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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