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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것들 Jan 13. 2022

흔한 공연장 스태프의 이성 찾기 ②

written by. 김해피 | 이성 잃은 기억을 중심으로.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 나는 주로 작고 큰 페스티벌 현장에서 일했고, 일하며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마음이라 여기고 살았다. 예를 들어, 일하는 현장에서는 눈앞에 어떤 유명인이 와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기. 어마어마하게 감동적인 음악이 날아와 ‘이래도 안 들을래?’ 하며 내 귀를 챱챱 후드려 때려도 동요하지 않기. 슬프거나 괴로워도 일단 일에 집중하기. 역대급 인생곡이 쌩 라이브 노동요로 들려온다든지 어쩌다 노래에 엮인 추억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온몸을 감아 올라올 때 이성적이기란 쉽지 않았지만 대개 마음먹은 대로 맡은 일을 해내곤 했다. 그러니까 이성이란, 나에게만큼은 생업에서의 가장 뚜렷한 현명함, 똑똑함, 그 이상의 지혜로움이므로 훌륭한 일잘러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자존심과도 같았다. 


그 실체 없는 자존심은 기어코 모 페스티벌의 동료로부터 ‘독하다’는 말도 듣게 했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내내 대부분이 각자 서러움 어린 긴장감 따위를 품고 살다가, 마지막 날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부둥켜안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짠한 모습은 숙연하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나는 그 시간에도 이성 찾느라 눈물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혼자 엉엉 울었으니까. 공연장에서 해피 감정 세포, 절. 대. 지. 켜.


그런데 현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몇 번은 청승 맞게 객석이나 백스테이지에서 마른 소매 깃을 눈물로 적셨다. 가장 최근은 지난해 10월 1일, 아티스트 Y의 투어 마지막 날이었다. 앞서 말하자면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구성할 때, 두 가지 버전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그중에는 해피가 꼽는 Y 연주중 최애 곡 <볼컴: 우아한 유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처음 전달받았을 때 이 곡이 드디어 몇 년 만에 다시 공연장에 앉은 관중들 앞에서 연주된다는 생각에 속으로 혼자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여느 현장 스태프들이 그렇듯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음에도 내게 의미 있는 곡이 일터에서 연주된다니 실컷 기뻐해도 모자랐다. 그렇지만 나 김해피, 스스로 정한 원칙에 따라 절대 티 내지 않는 것이 언젠가부터 습관이 된 편이었다.


그 곡에 대해서는 이미 아티스트를 포함한 동료들과 음악 얘기를 할 때, 이 연주를 대체할 같은 곡의 다른 연주가 없다고 말한 적 있다. 발매한 곡이 아니기에 오래된 연주 영상에 의지했었 것도, 그 영상이 어느 날 유튜브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한동안 울적했다는 것도, 영상이 다시 올라왔을 때에는 영상에서 음원을 추출하는 수고로움도 잊고 아이팟에 저장해 두고두고 들었다는 썰 풀이도 오래전에 마친 상태였다. 그러니 내가 홀에서 직접 듣지 못해도 이만큼이나 설레 하고 있을 줄 그들은 알았으려나? 싶기도 하다.


Y의 투어가 끝나는 마지막 도시는 서울이었고 서울에서는 양일간 공연을 진행했다. 첫날은 <볼컴: 우아한 유령>이 포함된 프로그램이었고 마지막 날은 포함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당연히 첫날 나는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이 바빴고, 다른 업무로 돌아다니느라 리허설도 30초 정도로 짧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신경도 못 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던 내가 이상할 정도로, Y는 김해피가 그 곡을 듣지 못한 것에 대해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 동안 안타까워했다. 마지막 날 프로그램에는 없지만 앵콜곡으로 연주할 테니 꼭 들어오라는 말은 정말 표현 그대로 ‘말 뿐이라도 감사’했다. 그러나 지금 다니는 회사는 도처에 사랑이 널린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기억했다가 시간이 된다면 나를 기꺼이 공연장에 넣어주는 그런 곳. 거대한 감성에 이성이 잠시 흔들려도 티 나지 않는 곳. 동료들은 아티스트 Y의 예고와 커튼콜을 촬영하는 나의 업무를 고려해, 뒷정리를 마친 후 공연 막바지에 나를 들여보냈다.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없었기에 나는 끝까지 ‘우아한 유령’을 듣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일에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충분한 마음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이미 완벽한 이벤트였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과 긴 박수 속 첫 번째 앵콜곡이 끝난 후, 두 번째 앵콜곡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객석에 앉아 모든 감각이 열리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음에 놀라웠고 감사했다. 그렇게 허락된 얼마간의 시간 동안, 사무치게 그리운 나의 친구들과 춤췄고 고단했던 과거에 인사했고 눈부신 시간을 딛고 선 지금에 경의를 표했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나 거창한 세계를 만난 기분은 눈물 콧물 한 번씩 삼켜내고야 끝이 났다. 현실로 돌아와 백스테이지 정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만난 Y의 첫마디는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

“해피씨! 들었어요?! 들었다니 다행이다!”


별안간 마음에 훅 들어온 말에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다정함에 과몰입했더랬다. 무엇이 Y를 다행이라 여기게 만들었을까? 나는 어쩌면 그의 평생에 오고 가는 많은 스태프 중 한 명인데. 왜 내 동료들은 나를 객석에서 듣게 하기 위해 마음을 써줬을까? 어차피 우리는 일을 하려고 모인 것뿐인데. 그 모든 상념들은 이 고된 직업세계에서 다정함의 중요성을 다시 곱씹게 했다. 2017년 자라섬재즈에서 인턴을 할 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들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란 내가 그들의 다정함이 아니었다면 지금 회사를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업계 현실에 괴로워하던 2017년을 기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이 따뜻한 순간들이다. (지독한 순간도 다 기억하니까 미화는 아닙니다.) 바쁜 현장에서 서로의 끼니를 챙긴 것은, 누군가의 자괴감을 산책으로 달래준 것은, 날카로운 마음을 애써 감싸준 것은, 틈만 나면 양껏 웃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랑이었거든. 우리는 모두 그런 마음을 이어받아 복잡한 이해관계와 여기저기서 충돌하는 문제들을 차곡차곡 메꾸며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과거 회상의 끝은 결국 이 업계의 척박함을 헤쳐나갈 무기가 다정함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했다.


그날 객석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일터에서의 ‘다정함’은 때때로 큰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눌루랄라와 이야기했다. 아픈 직업인들이 이토록 다정한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고. 관계에 지친 사람들로부터 ‘어디든 다 똑같겠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다 똑같지 않아.’ 단호하게 말한다. 불확실함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자기 위로의 엔트로피가 부디 따뜻한 마음을 만나 감소하기를 바란다.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직장 외에도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다정함=무기라는 공식이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소원한다. 다음 직장에서도 다정한 마음 받고 싶으니까 저를 위해 모두들 노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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