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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디 Apr 10. 2023

중꺾마

Underneath the sunshine, Earth


아침부터 유난히 몸이 무거웠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단 것이 당기는 것을 보면 몸이 게을러지고 싶은가 봅니다. 잠깐 배달 어플을 켰다가 껐습니다. 아무래도 한 번에 다 먹지도 못할 디저트와 배달비, 밥의 든든함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음식을 먹고서 느끼는 허전함 같은 것들이 다 손해인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어제 남긴 반찬거리를 데워 먹으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힘을 내어 차를 끓이고, 미뤄둔 이불빨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피곤한 몸을 푹 쉬게 했고 여러모로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말이죠.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건 일어나기 싫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평일 아침 일찍 일어나도 포근한 침구에 몸을 묻고 나를 일어나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유를 느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집에 산 이래로 대부분 내가 정한 게 아닌 시각에 일어나야 했던 터라 보상심리가 발동한 모양입니다. 사실 퇴사한 지는 꽤 되었는데 평일 아침의 자유를 실감한 것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산책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 덕분에 집 앞 호숫가에서 글을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눈을 뜨면 침구를 정리하고 집 상태를 둘러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강아지 산책을 가는 견주를 생각해 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피곤해도 낮밤으로 산책을 즐길 수 없다면 강아지 키우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사실 그런 성실한 환기는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필요했던 겁니다. 사람의 주인은 자기 자신뿐이니 어떤 잔소리를 들어도 몸을 일으킬 의지가 없다면 집에만, 그 자리에만 더 있고 싶어 집니다. 그게 당장은 편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서 최선의 상태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종의 자해일 수도 있겠습니다. 피로할 때에는 휴식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세상으로부터 사람을 고립시키는 건 장기적으로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꽃밭도 가까이서 보면 기상천외한 벌레와 먼지가 한가득이듯 세상도 결코 힘들고 더러운 것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목적 없이 헤매다 보면 뜻하지 않은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사람을 산책시켜 주는 건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마음의 여유를 꽤 많이 되찾았습니다. 

가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 그 아무것도 나를 짓누르는 것은 없다는 걸 천천히 알아갔습니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가장 나를 압박했던 것은 완벽히 저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도 같습니다. 지원서에 모든 글자를 제가 직접 적고 입사를 선택했고, 그 생활을 지속한 것도 전부 제 선택이죠. 그곳이 어떤 곳인지, 회사가 나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제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속할지 말지는 쉽지 않지만 전적으로 제가 선택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저 현재 익숙해진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귀찮고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제가 또 다른 굴레로 저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맑은 공기로 틈틈이 환기시키며 살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욕심을 내다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지나치게 되기 마련이더라고요. 그래서 돌아올 길이 막막할 만큼 멀리 가지는 않고 우선 집 앞부터 시작하자며 오늘도 또 오늘이 가장 첫날이라 생각하며 노트북을 닫을 겁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또 글을 쓰면 되니까요. 그게 중요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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