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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Sep 27. 2022

알고리즘의 리얼리즘

일만팔천오백육십구 킬로미터, 그 이상의 어떤 우연

약 6년 전만 해도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주 5일,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챗바퀴를 도는, 지하철 어디에 두어도 너무 익숙한 직장인 그 자체. 그랬던 내가 현재는 자영업자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전혀 다른 남미의 작은 나라 파라과이paraguay에서 음식을 판다. 그것도 현지인 대상으로.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 남미에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 음식장사를 6년째 하다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10년 넘게 책상머리 앞에만 앉아있던 내가 지금은 설거지부터 요리, 카운터 보기, 손님 응대, 회계, 노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물, 불, 돈 가리지 않고 식당 운영 전반의 것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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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이곳(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18,569km! 남들은 평생 한 번 올까말까 한, 여행지로서도 부담이 되는 이 먼거리를 난 대체 어떻게 오게 된 걸까? 더욱이 평생 남 밑에서만 일하던 내가 지금은 글자 그대로 자.영.업을 하고 있다니.. 내 삶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알고리즘 같은게 있는건 아닐까? 


서울에서 아순시온까지의 거리 18,569km



산다는 것, 그리고 살아 나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어쩌면 그 투성이들의 뭉탱이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내 삶을 흘러가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합리적이라고 우겨보지만 심증만 있는 알고리즘은 아무튼 나를 여기에 있게 했고, 어쨌든 나만의 리얼리즘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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