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롬보 속에서 매일을 배우다
요즘 나는 스티브잡스가 된 것 같다.
굿즈용으로 제작한 티셔츠에 청바지, 매일 같은 복장이다. 화장은 안한지 오래고 가게 안에서는 유니폼으로 생활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자영업이라는 게 그렇다. 누구는 창살없는 감옥이라는 가혹한 표현까지 쓰던데, 나도 경험해보기 전까진 몰랐다.
아니 그정도까지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 말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정 정도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1층 노동자, 사장 노동자.
자영업자는 또 다른 노동자다. 노동자를 고용한 노동자.
일반적인 노동자라면 남 밑에서 일하고 주어진 노동과 급여를 교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과 함께 남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자가 되면 삶의 무게가 몇 배는 더 커진다. 흔히 사장은 위에서 직원을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사장은 맨 아래에서부터 직원의 빈자리를 구석구석 채워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할 일도 제일 많고, 해야만 하는 일 투성이다..
나는 올해로 6년차 자영업자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만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 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자영업자가 종사하고 있을 요식업, 식당을 운영한다. 처음 시작은 말도안되게 안일했다. 밥상에 그저 수저 하나 얹는 심정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인간코로나의 부모님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자영업자다. 두분이서 이 먼 타지에서 일군 가게에 어쩌다보니 합류하게 됐다. 현지인들에게 이미 소문난 맛집으로 각인되어 있었기에, 아무런 걱정도 의심도 없이 함께했다. 그 때 당시 내가 아는 스페인어라고는 올라(안녕, 인사) 밖에 없었고, 라면만 겨우 끓일 줄 아는 수준으로 요리와는 저 세상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걸까? 지금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다행히 나는 새로운 것에 부딪혀 보는 것에 대해 어색함이 없다. 그래서 멋모르고 부딪혔던 것 같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도대체 뭐가 맞는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여기식 표현으로는 낄롬보!(quilombo! 남미 전역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글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충돌적인 경우 라는 구글 번역을 따라서, 그냥 쉽게 엉망진창 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쉬울 것 같다) 상태로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회사원 생활만 10년 넘게 해왔기에 적응도, 운영도, 앞으로 나아감도 낄롬보 투성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혼돈 속에 평화가 있다고 했던가. 부딪혀가면서 익힌 노하우는 이제서야 조금씩 뿌리 내리는 것 같다.
사실은 아직도 낄롬보다. 10%쯤 완벽한 스페인어로 직원들과 소통하고, 30%쯤 완성된 실력으로 요리를 한다. 다행히 설거지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를 지녔다고 조금은 자신한다. 이론은 나중에, 실습부터 체감하니 숨돌릴 틈이 없다. 늘 부족한 상태에서 허덕이며 쫓아가고 있다. 오늘도 잡순이로서 가게를 채워가고, 혼돈 속에서 매일 매일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