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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Feb 23. 2024

짜장면이 문제다.

짜장면이 화근이었다. 아니, 전시회가 시작이었다. 

"호박씨는 코엑스 가까우니까 3일입니다."

자리로 다가와서 보여주는 일정표에 대꾸할 수 없었다. 3일 나갈 힘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경력을 이은지 반년이 됐지만, 시시 때때로 나를 찾아오는 어지러움 때문에 초과 근무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대표에게 토로한 적은 없다. 대표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구구절절이 말한 적이 없다. 그러니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40대 후반 여성의 노동이란 크게 관심을 끌만한 일은 아니다. 부르짖어 내 상태에 대해서 알리길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씩씩해져야 한다고 입술을 다물어 보는 수밖에! 

좋게 생각하자 하고 노력을 해본 게 코엑스에서의 점심이었다. 전시회 기간 동안 코엑스에서 1일 식비는 3만 원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 경비 정산, 영수증 풀칠하기, 좋게 이야기하면 카드 관리, 멋있게 이야기하면 직원 10명의 이 회사 금고지기로써 알차게 3만 원을 채워 써보리 마음먹고 드넓은 코엑스 푸드 코트에서 뭘 먹을지 고민했다. 전시회 전날 두 아이 모두 학원으로, 야근으로 들어오지 않는 남편으로 텅 빈 집 소파에 앉아 불안함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괜찮다, 할 수 있다고 내게 주문을 걸어본다. 재미있을 거다. 즐겨보자, 3만 원! 무서움을 이기려면 상상의 행복이란 카드를 꺼내야 하는 법이다. 코엑스에서 3일이나 3만 원짜리 점심을 먹는 호사를 누리게 되는구나. 공유 오피스 혼밥 테이블 부스에서 아침에 부랴부랴 싸 온 도시락을 혼자 먹던 나에게 행운이 왔다. 


같이 밥 먹고 싶은 직원을 골라 산뜻하게 나섰지만, 찾는 사람 없는 회사 부스를 지키는 찌푸려진 대표의 얼굴을 보면서 느낌이 좋지 않다. 기대한 판매량의 1/4가 결국 팔리게 될 것이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전시회 준비의 2주 내내 날카로움으로 일관하던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3만 원짜리 짜장면을 개발팀 직원이 아무리 권해도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 압구정동에서 먹어봤다며 해맑게 대기번호를 입력하는 이 여의도 출신의 버클리대 졸업생의 여유에 애라 모르겠다 하고 눈감았다. 

진짜 맛있더라. 두툼한 스테이크가 양껏 올려진 짜장면 접시는 내 얼굴 두 배 사이즈다. 얇부리한 트뤼플 버섯 풍미가 짜장면에 감칠맛을 더하더라. 대기 시간, 음식 나오는 시간 꼬박 40분 정도 걸렸고 우린 만족스러운 얼굴로 회사 부스로 돌아왔다. 대표는 제일 가까운 패스트푸드 매장이 노브랜드 버거라며 메뉴에 대해서 알려주고 나간다. 촉이 좋지 않다. 


"호박씨님, 통장에 6만 원 찍혀있던데, 이건 뭐 3 사람이 가서 먹은 건가요?" 

두근두근 하다 못해, 속이 쓰려왔다. 나이 먹어가는 티가 소화기로 나타나 날 때마다 20대에 수없이 했던 다이어트를 후회한다. 나란 인간은 이렇게 먹는 걸로 고생하게 될 예정이었나 보다. 

"저랑 ** 직원이 먹고 왔습니다. 1인당 3만 원짜리 메뉴를 먹었고요. 그날 한도 3만 원에 맞췄습니다."

메신저 창에 정적이 흐른다. 전시회가 끝나고 다음날 직원들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밀린 업무가 어른 거려 차마 휴가를 낼 수 없어 일요일 누워만 있다가 일찌감치 출근했는데... 대표는 나의 퇴근 시간 3시간이 다 되어 푸석한 얼굴로 나와 식비 정산을 해달란다. 

걸릴 줄 알았다. 젠장. 그에게서 답이 왔다.

" 아니, 누구는 3만 원 넘게 먹고 누구는 3만 원 안되게 먹으면 규정이란 게 있는 건데 불공정한 거잖아요."

 공정과 불공정에 대해서 말한다. 내가 경력을 이어가는 이곳은 공정이 테마다. 행시를 준비했던 대표와 대표의 친구가 이사다. 성분을 분석하고, 유해 성분이 포함된 기성 제품들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작업이 우리의 업이다. 그러니 회사의 직원들은 깨어있는 중 가장 긴 시간을 공정과 불공정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나의 구차함이 이어진다.

" 그날은 3만 원 안 넘었어요." 


짜증 난다. 

통장에 100만 원이 찍히니, 그의 얼굴이 밝아지고 내게 말을 건네는 그의 음색이 누그러져 있어서 짜증이 더 난다. 서울시, 각종 신문사, 그리고 나의 경력 이음 경로였던 서울시 여성가족 재단에선 계속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수고료가 회사 통장으로 들어오고 금고지기인 나는 여성부에서 들어온 인터뷰비를 계속 발견한다. 

이번에도 꽤나 두둑이 들어온 인터뷰비는 회사 통장에서 대표를 내내 기쁘게 할 예정이다. 압구정동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에서 가서 3만 원짜리 짜장면 33개를 먹고도 만원이 남는 돈은 그에게 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게 한다. 공정함이란 돈과 기분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오늘 피부로 배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일은 어찌 출근해야 하나 걱정이 밀려온다. 

3만 원짜리 짜장면이 문제다. 


 

대문 사진: Unsplashmontatip lilitsan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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