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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29. 2024

사랑하는 요령을 파악하는 중이에요.

이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이 싫었다. 짧은 시간에 멋있고 싶은데, 어디 그게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경력을 잇게 된다는 사건 하나만으로 세상이 나를 달리 바라볼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세상이 한정 짓고, 무리 지어주는 의도에 끄덕이고 따르기란 쉽다. 예를 들면, 나를 바라봄에 먹고살만하고 애들 공부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돈은 많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런 중년 여성이라고 세상이 내게 명함을 만들어주었다. 그런 명함은 어딘가에 던져두고 하고 싶은데로 살고 싶은데로 주고 싶은데로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들 한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세상인데, 일찌감치 사내연애로 결혼까지 한 그녀M에겐 뭐가 자꾸 주고 싶었다. 까칠하기 짝이 없는 나의 입맛과는 다르게 배고프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사니 불러다가 집밥이라도 해먹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단다. 세상이 그런다. 남편도 충고해 준다. 도와주고 싶다고 해서, 주고 싶다고 해서 사랑을 퍼붓다가 왜 돌려주지 않느냐며 돌아서는 그런 변덕스러움으로 세상을 살지 말라고 한다. 적절한 거리유지가 오늘을 살아가는 처세술이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지구반대편 독일에서도 아이들 보고 늘 친구는 집에 데려오라고 했다. 모여서 같이 밥 먹고, 더 정들면 함께 요리하다 보면 끈끈해진다. 우린 같을 수는 없지만 모래알만큼의 닮은 점이라도 찾을 수 있다. 집밥을 해먹인 이에겐 힘든 점을 털어놓는다. 도와달란 말을 하는 거만큼 어려운 게 없는데 집밥을 한 번이라도 해 준 이에겐 왠지 도와달란 말을 해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샐 수 없이 많이 밥을 함께 먹은 친구에게 문득 카톡을 보냈다. 중, 고등학교를 영국에서 지냈던 그녀K라면,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 공황장애. 병원도 가구, 힘드네."

K는 곧 톡을 멈추고 다신 연락이 없다. 대기업의 잘 나가는 직원으로 커리어가 긴 그녀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저런 성향이 여야하나보다 싶다. K를 만났을 때가 갓 스물이었고, 이젠 그녀와 난 마흔 중반을 지나 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녀가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지낸 시간은 내가 그녀와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길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병을, 나의 아픔을 되묻지 않는다. 


 밥을 산다. 먹을 것을 챙긴다. 깐깐하기 그지없는 내 입에 괜찮은 것으로만 상대방에게 건넨다. 마음을 담아보는 거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물론 제일 힘을 많이 쏟지만, 타인에게도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서로 상처 입히지 말자고, 서로 최선을 다해서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살자고만 한다. 너와 내가 서로 알게 되고 이 시공간을 함께 하게 된 이상, 사는 게 팍팍하여도 원래 이다지도 애달픈 일이냐고 이야기를 나누기만 하면서 지내고 싶다. 부디! 

순진하게 살라고 애들한테 가르친다고 한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을 살면서 감정이입과 눈물, 관심과 사랑은 그대에게 최약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타고난 것을? 바뀔 자신이 없다. 요령을 터득해야겠다. 나에게 닥치는 변화들은 요령 터득의 시험대이겠거니. 


사진: UnsplashLaura Cleff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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