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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22. 2024

꿈이 들리시나요, 보이시나요?

"엄마는 꿈이 스토리로 들려 아니면 영화로 보여?"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린 꿈에 대해서 크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새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태몽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태어날 아이의 성별이나 미래에 대해서 대화 나누기 바쁘던 그런 때가 있었다. 멀리 떠나가,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닥친 위험에 대해서 우린 꿈을 꾸었다.  꿈으로 예감하가고 미루어 짐작하는 세상이 아니다. 궁금하면 전화하면 되고, 촉이 발동하면 카톡을 보내면 된다. 지구 건너편에 있어도 혹시 큰일이 있냐며 물을 수 있고, 골치 아픈 상황을 바로바로 털어놓을 수 있다. 꿈은 인연이라는 그 오묘함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였었으나, 이젠 꿈 따윈 필요 없다. 

 " 엄마는 영화로 보이는데? 넌 아니야?"

" 응, 난 이야기로 들려!"

신기하다. 

가족들 중에서 책을 가장 사랑하고, 몰래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 꿈이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큰 아이는 나보다 더 텍스트형 인간인가 보다. 


일요일 병이 도졌다. 일요일 밤만 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출근할 게 걱정이 되는 주가 연속이었는데 이번주는 특별히 그렇다. 베개에 머리를 댄 지 5분 만에 잠이 올만큼 노곤하지 않다면 감은 눈앞이 하얗게 밝아지다 못해 눈이 부셔서 결국 감은 눈을 다시 뜰 수밖에 없다. 

"아, 몰라. 잠 안 오면 말어."

이렇게 잠 네가 안 오면 말아라 하고 생각하면 잠이 온다. 쉽지 않게 잠이 들면 꿈이 사납다. 지나간 실패들이 나를 옭아매고, 손발 묶인 내가 답답해서 눈물이 난다. 자면서 그리고 꿈을 꾸면서 운다. 요새 자주 그런다. 어제도 통 잠이 안 왔고, 연속되지 않는 단편영화 같은 장면이 스쳐가 잤는지 안 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남편은 그런 상태도 모르고 굿모닝을 외쳤다.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아침시간에 기분이 좋다. 

어제 남편과 나눈 이야기 때문에 이런가 보다. 

나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울었고, 그는 휴지를 뽑아 건넸다. 울지 않으려고 꾸역 차를 마시고 눈을 치켜떴는데 쪽팔리게도 그 앞에서 울었고 남편은 위로해 주었다. 뿌듯해했다.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해 주니 그는 상황이 파악됐다고 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고 나니 나도 이해가 되었다고 추측하더니 기뻐했다. 나의 회사 내 업무 진행도, 권력관계를 파악하더니 이젠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서랍 정리하듯 반듯하게 상황을 줄지어 놓았다. 그는 T다. 쌉T. 그리고 내겐 감정들이 남았다. 

그에게 털어놓은 상황들 대부분 나는 침묵했다. 열받을수록 조용해졌고, 부당하다 싶을 때일수록 꼼짝달싹 하지 않았으니까. 반년 전, 입사의 시작에서 착각과 열정, 관심과 사랑으로 회사를 바라보던 내 마음은 순진하였구나 싶으니 관심과 사랑을 쏟았던 대상에게 배신감이 밀려온다. 이렇면 안 되는데... 그들은 내게 관심과 사랑을 그렇게나 많이 요구한 적이 없었다. 요구한 적 없는 정도의 사랑은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이용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시간차 공격처럼 세상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는 운다. 순진했던 내가 불쌍하고 가여워서 운다. 


그들에게 독기 어린 눈으로 바라봐선 안되는데, 쉽지는 않다. 같은 값으로 돌려받기를 원하는 감정은 진짜가 아닌데, 나란 인간은 그들에게 내가 줬던 관심에 1도 돌려주지 않느냐고 퍼붓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그러니 잠이 오질 않는다. 꿈에선 사이코패스나 살인마가 되어 여기저기 칼을 휘두르고 다닌다. 독일서 한창 스트레스받을 땐 꿈속 내가 사람을 차례차례 죽이더나 침대 밑에 고이 집어넣어 쌓아두곤 했다. 이 꿈울 무한 루프로 꾸었었다. 그렇게 꿈에서라도 감정을 죽이는 게 내겐 도움이 되었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내가 꾼 꿈에 스스로 무서워서 일어나 앉아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곤 했었다. 꿈속에서 칼을 휘도 나면, 시체 여럿을 침대 밑에 쌓아 두고 나면, 오히려 나의 일요병은 사라지지 않을까? 도리어 그 무서운 꿈을 꾸길 바래야 하는 걸까? 

아이에게 장난스럽게 엄마는 독일에서 이런 꿈을 많이 꿨더라고 했더니 아이가 너스레를 떨며 자기는 잠꼬대도 심하고, 꿈도 여럿 꾸었다며 대수롭지 않아 한다. 아이의 맞장구에도 눈물이 난다. 꿈에선 살인마일지언정 현실에서 울보엄마가 되기란 질색이라 끔벅끔벅 눈물을 치켜올려본다. 나오지 말란 말이다. 눈물! 퍼붓지 말란 말이다, 사랑! 

  

사진: UnsplashWes H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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