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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Oct 12. 2024

외모에 대한 평가 앞에서

한강 작가의 사진이 많지 않은 가보다.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그녀의 사진을 흑백 스케치 스타일로 바꾼 삽화가 내 눈엔 가장 아름답다. 흔히 작가 사진이나 브런치 프로필을 보면 보기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잘 요리하여 구성해 놓은 사진을 쉽게 발견한다. 여자 작가들이라면 당연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뒷모습 또는 필터를 넣은 정장 차림인 경우가 많다. 예외 없이 사진용 화장이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겉옷처럼 입혀져 있다. 

남자 작가라면 전문가의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지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그들의 프로필 사진 곳곳에 꽂혀있다. 미래를 읽는 책을 내는 작가라면 (흔히 남자다.)  예외 없이 파워포즈로 사진을 찍어 책 커버에 큼지막하게 배치한다. 현재를 해석하는 글을 쓰는 작가라면 ( 이 또한 흔히 남자다.) 어두운 색의 쟈켓에 총명하게 보이는 머리스타일과 눈을 가지고 있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안경을 걸친 그들이 세상을 향한 혜안을 그려줄 것만 같이 느껴진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대중이 가지는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탈 거라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고 글을 썼더라면, 저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을까 싶다. 글로 유명해질 거라고 작정하고 썼더라면 말이다. 하다못해 인터뷰 사진이라도 책 간담회 사진이라도 한 번의 정장, 단 한 번의 립스틱칠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글이 세상에 어떻게 비추던지 간에 글을 써 내려가고야 말겠다는 한 인간의 얼굴은 저러해야 한다는 걸 누누이 알려준다. 




"그건 기미인가? 좀 빼야겠는데!" 

실버타운에 계신 할머니의 치매 증상에 대해 왈가불가하던 지난주였다. 한글날 당장 할머니를 뵈러 가겠다는 아빠의 음성에서 불안함이 묻어난다. 힘을 실어드려야겠다 싶어 고기 사달라며 할머니의 실버타운으로 나도 가겠다고 했다. 쉬는 날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데다가 한글날 전에 큰 아이가 학교에서 큼지막한 사고를 친 바람에 얼굴도 몸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이런 날도 어김없이 아빠는 말하는 나를 바라보다가 내 말을 끊고 기미 타령이다. 이 기미로 말할 거 같으면 첫 독일의 여름에 장렬히 얻은 놈이다. 선크림 바를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여기서 애들과 잘 지내볼까를 생각하겠다고 할 만큼 지독하게 지냈다. 처음 맞는 천국 같은 날씨의 독일, 2달이나 되는 국제학교의 여름 방학이 내겐 낯설기 그지없었다. 낯선 건 익숙해질 때까지 자꾸자꾸 부딪혀 보고 뭐라도 해야 한다. 

 독일의 태양은 여름에 그 높이가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10시가 돼도 지지 않는 해이니 정오엔 오죽하랴. 3시가 되면 정수리 위에 해가 자리 잡고 있어서 광대를 비추고도 남는다. 아시안 치고는 높지 않은 광대지만 유럽인보다야 높은 광대인지라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어야만 했다.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의 내가 글쓰기에 간절하듯, 그날의 나는 아이들이 제 나라 살듯 독일의 여름을 지내길 바랐다. 오로지 간절함은 그것 단 하나였다. 


앞뒤 사정 보지 않고 집중하여 마음먹고 달리는 여자가 사회적으로 보기에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다. 나란 사람의 오늘의 쓸모는 사실 "보기 좋음"하고는 거리가 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앱 운영과 직원들 관리에 하루 6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누구와도 회의나 미팅, 화상통화를 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듣기 좋음"이어야겠다. 고객이나 업체 전화는 내가 다 받고 있으니 꾀꼬리 같은 목소리 유지는 필요하겠다. 예쁜 얼굴, 기술 좋은 메이크업은 내게 요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안경을 끼고 오래 앉아있기 가장 편한 바지를 입고 출퇴근을 하고 업무에 열중한다. 퇴근하면 파자마차림으로 변신하여 부지런히 밥하고 청소, 빨래를 한다. 쉬는 날은 얼굴이 땅김을 막기 위한 로션을 착용하고 인디언핑크색 야구모자를 쓰고 산다. 적어도 할머니를 만날 땐 야구모자는 아닌 거 같아 로션을 바르고 아버지를 뵈었더니 외모평가가 내려진다. 할머니도 한몫하신다. 

"요새 살이 좀 붙었니? 나이 들면 살이 있어야 한다."

살쪘나?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이들조차도 내 존재이유와 쓸모에 대해서 잔뜩 오해하고 있다. 잘 팔리기 위한 책을 쓰기 위해선 아름다운 커버가 중요하다.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보기 좋은 프로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더러움과 추악함 그리고 귀찮음을 맞닥뜨리는 사람에겐 "보기 좋음"이란 부끄러움일 수도 있다. 이토록 세상이 아픈 것을 나만 어떻게 멀쩡한 척한단 말인가?

"찬 바람 부니 알레르기가 나나 봐요. 눈이 가렵고 빨개지네."

할머니와의 식사자리로 이동하면서 남편과 한참을 큰 아이 이야기를 했다. 가슴을 저미는 주제에 대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지하철이니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나란 사람은 현재의 내 쓸모에 철저히 몰입해 있어 참던 눈물이 굵게 떨어졌다. 두 번 뚝뚝 떨어지기에 가방 안에 들어있던 물티슈로 아무렇지도 않게 훔쳐냈는데 할머니네 도착했을 때 얼굴 상태는 좋지 않았었나 보다. 매의 눈을 가진 나의 아버지에게 들켰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독일에서 돌아온 날부터 아빠가 내내 이야기하시던 기미는 또 주제에 올랐다. 

이야기하실 때마다 매번 괜찮다고 말씀드리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내겐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간들에 대한 훈장이라 이 기미마저도 소중한데, 그 누구도 이런 내 마음을 알지는 못한다. 

 보기 좋음으로 살기보단 쓸모 있음으로 살고 싶다. 누가 알라고 사는 삶이 아니라, 없었던 듯 사라지며 배경처럼 존재했던 삶이라고 기억되고 싶다. 겉보기엔 하찮아서 알고보니 너무나 소중한 그런 존재로 이 삶을 채우고 싶다. 


사진: UnsplashBruno van der Kr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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