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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주 Aug 09. 2022

연락 안하는 손주

사랑합니다 할머니

오늘 할머니댁에 갔다왔다. 광주와 야탑은 그렇게 멀지 않지만, 왜 야탑에서 이사를 갔냐고 매번 질타를 하신다. 교통 좋고 사람 많은데 살면 좀 좋냐고 말이다. 이 말에는 할머니의 서운함이 담겨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큰 집에 작은고모와 덩그러니 놓여진 기분을 나는 잘 모른다. 간간히 연락을 드리고 2-3주에 한 번씩 찾아뵈는 손주로써의 도리를 다 할 뿐이다.


나는 10살까지 할머니댁에서 자랐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할머니가 형과 나를 소중하게 키워주셨다. 철없던 형과 나를 빨간 세숫대야에 넣고 벅벅 씻겨주시던, 젓가락질은 이렇게 하는거라고 알려주시던 할머니의 70세 젊은날이 지금은 깊이 패인 주름으로 자리잡았다. 하나씩 짚어가면 끝도 없을 것이다. 할머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주셨는지,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누구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는지.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께 연락을 자주 드리지 않았다. 군대에서 간간히 연락을 드리며 찾아간다고 전화드린다고 말씀드리고는 그러지 않았다. 귀찮아서, 노쇠해 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내 의무를 까먹어서, 익숙함에 소중함을 잃어서 할머니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내 삶이 바쁨이든 일이든 공부든 지식이든 뭔가로 채워지길 바라는 와중에 고작 5분이란 시간을 할애하는게 아까워서 유튜브를 켜고 인스타그램을 물색했다.


10년이란 시간에 비하면 내가 사용하는 5분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그 5분이 세월의 공허함을 달래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할머니에게 시간을 내어 연락하는 것은, 손주로써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진심을 담아 꼬박꼬박 연락을 드려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가장 걱정하고 계시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린다. 손주 밥을 못 먹이고 돌려보냈다고 밥을 꼭 먹이라고 하는 할머니의 말씀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하루종일 온 몸이 아프다고 하셨음에도 건강한 22살의 청년을 걱정하는 마음. 할머니는 매번 고개를 내저으시지만, 조심스레 적어본다.




할머니 좀만 기다리셔요. 금방 더 멋있어질테니까. 결혼하는 것도 보셔야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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