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던 겨울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6년 10월,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그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이슈였다. 단순히 최순실이라는 여인의 딸이 대학교를 부정 입학하여 공정성에 어긋난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현직 대통령까지 걸려있었다니.
부정입학에서부터 게이트까지, 단 몇 주만에 국민들은 광화문으로 뛰쳐나가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다. 정치라면 ‘극혐’을 외치며 무관심의 굴에 들어간 사람들을 단숨에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 대통령의 그릇된 행위를 애써 변호하려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말에도 국민들은 절대 속지 않았고, 대통령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에 대해 아낌없이 비판했다. 국민들은 진정한 나라가 무엇인지 고뇌하고, 상대방과 소통하며, 옳은 국가관과 사회관을 정립하고자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 네가 생각하는 나라,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 ‘나’에서 ‘너’로, ‘너’에서 ‘우리’로. 국가의 주체가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느덧 ‘우리’ 나라를 외치고 있었다. 국민이 ‘정치’를 고민하게 만든, 촛불혁명의 시작이었다. 과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던 겨울이었다.
더웠던 겨울의 온기는 어디에
5년 뒤 지금. 5년 전에 비해 무엇이 바뀌었는가? 대통령이 바뀌었고, 여당과 야당이 바뀌었다. 그다음은? 물론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답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무엇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정치인들의 이념 싸움도, 타깃을 잡고 비난하는 언론들도, 선거 때마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답답해하는 국민들도. 5년 전과 비슷한 그림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일까?
과거 2016년 촛불혁명 이후 박근혜 정부 교체 시기에는 진보 당이, 현재 2021년 문재인 정부 교체 시기에는 보수 당이 ‘정권 심판’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에서 말이다.
* 원래는 인민이 더 맞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백성 ‘민’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들이 말하는 정권 심판은 무엇이고, 심판의 주체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우리가 이것을 보기 위해 그 추운 겨울날 광화문에 모여서 촛불을 들었던가? 왜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음에도 정치인들의 이념 프레임과 언론플레이는 그대로인가? 이건 누구의 문제인 것인가? 촛불의 온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이러한 모습이 한반도의 역사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땅 가운데 여러 운동이나 혁명이 있었으나 현재의 우리에게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은 19세기부터 볼 수 있다. 홍경래의 난, 동학농민운동, 만민공동회,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100년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의 역사에서 민(民)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평소에는 나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나라의 방향성을 고민하여 운동을 실행에 옮긴 민들은 한반도의 변화를 야기했다.
운동의 원인,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던 양반들이나 관리자들은 민들의 심판에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운동 이후 실제 정책을 만들어 가고 나랏일을 운영함에 있어서 민들이 아닌 운동의 핵심 원인들이 주체가 되었으므로, 민들의 요구가 온전히 수용될 수 없었다. 오히려 민들은 기존 체제의 기득권들에 의해 제압되거나 급기야는 죽임 당했다. 이것이 과연 19세기에만 해당하는 내용이었던가? 불과 5년 전, 우리가 숨 쉬고 살아있는 이 시대에서도 볼 수 있던 모습이다.
한반도 역사를 보면,
1) 민들이
기존의 체제에서 발생한 문제를 인식하고
2) 기득권에게 저항하여
3) 체제/구조 혹은 사람이 바뀌지만
4) 기존의 문제가 다시 발생하는
이러한 구조를 반복해왔다.
프랑스혁명 이야기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 먼 나라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1789년). 프랑스혁명은 결코 우연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다. ‘한낱’ 상퀄로트*가 긴 칼과 총을 들고 프랑스 파리 코뮌**을 장악한 이 혁명, 과연 어떻게 일어났던 것일까?
* 이 당시 귀족들은 ‘퀼로트(culotte)’라는 바지를 입었다. 이때 빈민층이나 노동자는 귀족과 반대로 퀼로트를 입지 않는다(프랑스 부정형 ‘sans’)고 하여, 이들을 가리켜 ‘상퀄로트(sans-culotte)’라고 불렀다.
** 파리 시의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17세기 왕권신수설로 점철되어 있던 루이 14세의 스피릿은 루이 16세까지 흘러왔다. 루이 16세는 정치를 몰라 무능했고, ‘군주’라는 위치에 골몰해 오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7-18세기 프랑스의 경제는 바닥을 쳤고, 사람들은 그 흔한 빵과 포도주조차 먹기 어려웠다. 마치 16세기 선조 재위 당시 임진왜란이 지나고 잔해만 남은 조선의 모습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이 당시 프랑스에는 ‘앙시앵레짐’***이라는 사회상이 존재했는데, 절대군주와 귀족의 봉건주의와 수구성이 극치에 달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했나. 정치든 경제든 그 무엇 하나 개선될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가던 파리 시민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구원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계몽주의로 절대군주의 무능함과 귀족의 이중성을 마주하고 환멸을 느낀 시민들은 결국 테니스코트 한복판(테니스코트 서약)에서 이들과 맞서 싸울 것을 강력히 주창했다. 바야흐로 저항의 시작이었다.
*** 구제도(舊制度). 신분을 1신분, 2신분, 3신분으로 나누었는데, 1신분인 성직자와 2신분인 귀족들은 정치적/경제적인 특권을 누렸다. 반면 3신분인 농민(일반 시민)의 경우 납세 등의 의무를 지니며 사실상 1신분과 2신분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했다.
저항의 주축이었던 ‘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제정하기까지 오랜 시간 토론하였다.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선포는 정치에 한 획을 그었다. 신이 부여한 권한을 지닌 한 사람, 한 집단만이 아닌 그 어떤 누구도 국가라는 바운더리 안에 있다면, 아니 ‘인간’이라면 응당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현재 우리가 헌법에서 볼 수 있는 조항들은 우리 입장에서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계몽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들이 말한 ‘자유’, ‘권리’는 귀족들에 의해서 발현되지 않고 오롯이 파리 시민들에 의해 일구어졌고 쭉 유지되었다. 물론 이후 나폴레옹의 군주정이 있었으나, 프랑스혁명으로 얻은 정치적인 방향성은 잃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프랑스혁명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혁명들과 달랐던 것은 무엇이었나.
첫째, 민들이 생각하는 나라와 사회 구조가 있기에, 민들은 기득권에게 속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했다. 둘째, 기득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인 정치적 행동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저항했다. 셋째,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결국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저항이든, 속지 않는 것이든. 안타깝게도 한국을 ‘냄비’라고 비유하는 것처럼, 지속성 없는 행동은 기득권을 견제하고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이 시민을 상대로 기만할 수 있는 장을 펼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구조를 끊어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 사회, 국가에 대해 성찰하고 평가하며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가운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라보며, 시민으로서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고뇌해야 한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주체성 없이 행동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올바른 시민의식을 키우기는커녕 고상한 시민인 ‘척’하는 존재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척’하는 기득권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시민의식을 갖춤과 동시에 지속성이 필요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이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때 진정한 나라를 생각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이 생각이 지속되어 개인과 사회 구조의 변화 및 유지까지 이루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이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역사에서 마주하였듯, 힘들고 지치는 싸움의 연속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득권이 계속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모습에 속지 않아야 할 것이다.
미래 한반도의 방향성 논의와 준비는 고사하고 이념으로 점철된 정치적 싸움으로 권력을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 혹은 언론들. 이것을 끊어내는 시작은 일반 시민인 우리가 올바른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이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촛불혁명 5주년이 된 지금, 반복되는 부정적인 한반도의 역사를 끊어내는 주체는 ‘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자부심과 포부를 가지고,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상황들을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하나하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촛불혁명의 발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