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예경 Feb 03. 2023

<원목>

에세이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는 ‘미드 센추리 모던’입니다. 미드 센추리는 1940∼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한 주택 및 인테리어 양식으로, 독일의 바우하우스 스타일과 미국의 인터내셔널 스타일이 기반이 됐습니다. 미드 센추리 모던은 실용성과 간결한 디자인을 특징으로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유럽 감성이 유행으로 군림했는데, 이젠 미드 센추리가 대세입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 취향은 영원할 수 없고, 그런 취향의 변화는 소리소문 없이 곁에 다가오는 것이 실감이 나는군요.   

  

미드 센추리식 인테리어 하면 ‘모듈 가구’가 대표적으로 떠오릅니다. 모듈 가구는 ‘모듈러(Modular)’라는 단어 뜻에서 나온 말로 모듈러 가구라고도 불립니다. 하나의 덩어리로 제작된 가구가 아닌 규격화된 부품을 내 마음대로 조립해 원하는 형태의 가구를 만들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갑자기 한국에서 모듈 가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간결하고 깔끔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를 실현할 수 있으면서도, 1인 가구를 위한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면모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6첩짜리 제 자취방은 미드 센추리 모던 식 인테리어로, 철제와 스틸 소재의 모듈 가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간결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제 방이 저는 마음에 듭니다. 행거, 책장, 트롤리 등 하나하나 설명서를 보며 조립한 고생한 기억이 있어 나름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하지만, 은빛 가구들로 찬 제 방은 어딘가 차가워 보입니다. 실제로도 창틈 새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추운 방을 더 춥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원목을 좋아합니다. 원목은 정직해서 좋습니다. 다른 곳에서 데려왔어도, 원래 한 세트였던 것 마냥 서로 잘 어우러지거든요. 나무의 향과 나뭇결의 감촉이 생생해 그런지, 원목으로 꾸민 방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딱딱한 자재가 어떻게 사람 마음에 말랑하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그렇기에 원목은 오래간 사랑받아온 소재가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원목 가구들로 계약기간이 2년인 방을 채우는 것은 제게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값도 나가거니와, 무게가 상당한 가구들을 데리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작은 자취방에 애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집에 정성을 쏟고 꾸미며 예뻐하는 것은 일회용기를 정성스레 닦는 것과 비슷한 기분입니다.



 철제와 모듈 가구 속, 유일한 원목 소재인 침대 위에서 저는 꿈을 꿉니다. 아늑한 통나무집, 빨간 체크 커튼이 운치 있게 살랑거리며, 벽난로의 불이 타닥타닥 타오릅니다. 집안은 외풍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온기가 가득합니다. “네가 동화를 좋아한다면, 여기엔 새 책장을 둘까.”하는 다정한 대화가 오가며, 하나둘 원목 가구가 채워집니다. 더 이상, 2년 단위로 이리저리 집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월세에 절절매며, 끊임없이 이곳이 남의 집임을 상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6첩 방에서 벗어난 고단한 다리를 편히 뉠 수 있는 너른 집. 인테리어 업체를 부르지 않고 가족과 한 땀 한 땀 채우며, 가구의 나무 향을 맡으며 나이테 모양을 살살 쓸어보아 일어나고 잠드는 어느 곳이든 정성과 손길이 묻어있는, 그런 따뜻한 집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