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 마지막
낯선 도시 낯선 방이지만 여독에 피곤했던 것도 있고 온천욕으로 긴장이 풀려서 인지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나는 평소 피곤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낮에 졸림을 이겨내기 위해 카페인을 여러 잔 마셔버린다. 그러니 저녁이 되면 몸은 피곤하지만 뇌가 깨어있는 경우가 많다.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다시 피곤함이 반복인 거다. 그래도 이날은 평소와 다르게 너무 잘 자서 알람 없이 맑은 정신으로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니 배도 일찍 고프다.
"조식을 예약했었어야 했는데 료칸은 조식 석식인데.." 하며 어제의 나를 후회하며 (비행기 놓침) 아침 온천을 하러 야외 온천탕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산 전체에 안개가 그윽하다. 신비스럽다.
온천탕으로 가려면 돌계단을 밟고 가야 하는데 신비 따지다가 뇌진탕 걱정이 들어 조심히 지르밟고 탕으로 향했다. 천천히 걸어가니 주변도 눈에 더 깊게 담을 수 있어 오히려 더 좋다.
남녀 구분되어있는 야외 온천탕은 심플했고 조용하고 깨끗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비가 땅에 닿는 소리가 리듬감 있어 힐링하며 즐길 수 있었다. 바람도 온천향을 불러 모아 느끼게 해 주니 오감이 자극되어 여유가 된다면 정말 한 달 살기 하고 싶었다.
조용하고 여백 가득한 수묵화 같은 온천을 즐기고 나니 시끄러웠던 마음이 비워지고 기분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체크 아웃을 하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식당이라도 들어가서 요기할 생각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보니 달팽이가 벽을 타고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게 보였다. 내가 다가가 계속 쳐다봐도 달팽이는 본인 속도로 천천히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빨리 움직인 거겠지. 괴롭히지 말자하며 식당을 찾아 헤매다 실패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산아래로 내려와 도시로 가는 기차를 갈아 탔다.
원래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기차 안에서 또 도시락을 사 먹을 생각이었다. 일본 기차 도시락은 나에게 있어 그냥 그 자체가 여행 경험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배불러도 먹으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첫끼다(?).
도시로 돌아가는 기차 안, 도시락을 냠냠하고 지나가는 역무원에게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시며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하니 ,
과연 여기 있는 누가 , 내가 어제 일본에 와서 이렇게 있을 줄 알겠는가 싶었다.
사람마다 모두 스토리가 있고 다 "내"가 있고 모두가 주인공 시점 아니면 제삼자 시점인 게 인생인가 싶었다. 그날 나를 스쳐 지나간 그 누구에겐 내가 여기 있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겠지만 , 그도 내겐 그런 존재이니까. 그러니까 소중하지 않은 사람없고 모두의 의견은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을 인정하자 뭐 이런 철학적인 생각도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낯선 곳이니 가능하지싶다. 일단 들리는 언어가 내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나는 국내보다는 해외여행이 힐링되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그런 끌림이 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나가고 싶었던 걸지도.
여행의 마지막은 신주쿠역이었던 것같다. 신주쿠 돈키호테에서 신나게 쇼핑하고 저녁에 한국으로 돌아왔더랬다.
이런 즉흥 여행이 이 역병때문에 막힌지가 몇 년인지, 너무 그립다.
여행-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