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법
《진실의 흑역사 #인간은_입만_열면_거짓말을_한다》를 읽고
2016년 이후 많은 이들이 '탈-진실 post-truth 시대'가 왔다고 했다. 가짜 뉴스와 가짜 계정이 넘쳐나고 트럼프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쏟아내는 등 진실이 설 자리가 없어진 듯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탈-진실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개소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탈-진실 시대'가 있으려면 그 이전에 '진실 시대'가 있어야 하는데, 인류의 역사에 그런 시대는 없었다.
"우리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실과 정직이 꽃피는 사실과 증거를 금과옥조로 삼는 시대에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순 헛소리다(p.17)."
"당신은 순 구라쟁이다(p. 15)."로 시작하는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1장부터 4장에서는 거짓의 기원(1장)과 그 거짓이 세상에 퍼지는 과정(2장, 3장, 4장)을 다룬다. 5장부터 7장에서는 사기꾼(5장), 정치인(6장), 상업인(7장)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8장에서는 진실의 흑역사가 거짓말쟁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문제임을 '마녀사냥' 등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며 맺는 글의 거짓말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안으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거짓말의 역사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서술하는데,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 의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거짓말을 왜 믿었는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노력 장벽, 정보 공백, 개소리 순환고리, 동기에 의한 추론 등으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예를 들면, 직접 확인하기 조금 어렵지만 어떤 관념에는 들어맞는 거짓말이 위키피디아에 오르고, 누군가 이를 인용하고, 다시 이 글이 위키피디아에 근거로 남게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거짓말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길고 긴 진실의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계속 서로에게 속아왔고 벤자민 프랭클린(사실상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은 자는 짧은 역사 속에서도 수차례 거짓말 업적을 남겼다. 어쩌면 인류의 발전이 그 거짓말을 지어내는 상상력 덕분이라고도 하니 수많은 오류와 거짓말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원래 세상이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고 진실은 희소하다. 이를 해결하고자 모든 거짓을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그것이 거짓말이 아닌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우선, 노력 장벽에 맞서면 된다. 사실 많은 거짓말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허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큰 거짓말일수록 항상 어디에선가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 마련이다. 출처를 확인하고 전문가와 협업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력 장벽에 맞설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편향성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 생각이 없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이 도대체 어디인가. 자신의 편향성을 인정해야만, 어떤 정보가 자신의 편향성에 적합하기 때문에 믿음직한 건 아닌지 생각할 수 있다. 나의 틀이 명확히 있어야만 틀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구라쟁이, 너도 구라쟁이, 우리 모두 구라쟁이인 사회에서 그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정직함을 향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오류 속에서도 진실을 향한 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매 순간 정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이는 거짓말을 모두 지워버리려는 것만큼 무모하다. 사람이 어떻게 24시간 자고 먹고 씻는 동안에도 영웅적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몇 순간에 거짓이 아닌 진실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만이 거짓의 홍수를 기반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거짓말의 역사가 자동으로 진실의 역사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