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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민 Oct 02. 2021

파견고용이라는 지옥에 관하여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읽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용자는 노동자를 착취한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노동으로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 노동자에게는 먹고살 만큼의 비용만 지출하면서 말이다. 중간착취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하청업체라는 제삼자가 개입하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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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착취는 두 계약의 빈틈에서 발생한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때는 근로계약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지만 삼자가 연루되는 간접 고용에서는 두 가지 계약이 필요하다. 원청이 경비 등 특정 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길 때 원청과 용역업체가 맺는 '도급계약' 그리고 용역업체가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이다. _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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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은 하청과 순수 인건비인 직접노무비를 포함한 도급계약을 맺으나, 노동자는 직접노무비로 책정된 임금이 아닌, 하청과의 근로계약서에 적힌 임금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하청은 인건비의 많은 비중을 '합법적으로' 착복한다. 명목은 운영비•관리비이나 노동 환경 관리는커녕, 마스크조차 제대로 보급하지 않는다. 애초에 착취당하는 존재인 노동자는 이 과정을 통해 이중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착취당한다.


 운영비•관리비 명목으로 뜯긴 돈은 하청업체 사장의 주머니로 향한다. 노동자는 월 백만 원대의 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사장은 많게는 20억 원대의 연봉을 가만히 앉아서 챙긴다. 노동자는 받아야 할 임금도 착복당하고 최저임금 올랐다고 식대나 근속수당도 빼앗기며 업체의 위장폐업으로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는 동안, 그 돈은 사장의 주머니만 두둑이 채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는 굳이 이런 계약에 응하는 것일까?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 다 이 한 문장 덕분이다.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하고 항의하고 싸우고 투쟁하면 잘린다. 투쟁하기도 전에 계약이 해지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 앞에 2년 이상 파견고용 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도 소용없다. 돈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까지 모조리 빼앗긴 것이다.


 이러한 중간착취 실태를 원청도 잘 알고 있다. 묵인에서 나아가 원청이 하청의 행태를 이끈다. 하청업체 사장 중 다수는 원청업체 출신이며, 심지어 하청업체 사장직을 퇴임 후 한몫 챙기는 자리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원청 입장에서 파견고용은 직접고용도 피하고 책임도 덜고 돈도 아끼면서 나이 든 임원 대우도 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중간착취에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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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업체는 책임질 필요가 없고 하청업체는 책임질 능력이 없다. 지금까지 간접고용 시장은 원청•하청이 이런 이유로 '눈 가리고 아웅'을 주고받는 형태로 굴러왔다. 원청•하청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손해를 보는 사람은 간접고용 노동자뿐이다. 노동자를 빼면 모두가 '해피'하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_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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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괜찮지 않은 문제에 국회와 정부는 무관심하고 무능하다. 파견법이 제정될 당시에도 여야 국회의원을 가리지 않고 지금과 같은 사태가 예견되었으나, 정부는 밀어붙였다. 이후 20년 넘는 시간 국회는 파견법의 폐기 혹은 개정을 위한 발의를 적지만 꾸준히 해왔으나 통과된 건은 사실상 없었다. 꾸준히 발의하지만 아무도 통과시키지 않는 이 모습이 중간착취 문제를 다루는 우리 국회의 오랜 태도이다.

 현 정부의 고용노동부도 "간접고용을 정의 내리고 범위를 정하는 게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문제 해결을 거부한다. 모호한 것을 정의하고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법통해 자유계약의 결함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자들이 오히려 자유계약 논리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대목에서 책의 저자들은 국가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조직인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국가가 있는지 묻는다.


 이 책을 읽고 지난해 읽은 《임계장 이야기》가 떠올랐다. 《임계장 이야기》가 경비노동자의 현실을 집중해서 보여주었다면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그 이야기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여 찾는 듯했다. 돈을 뺏어가고 사소한 트집은 다 잡으면서 필요할 때는 나 몰라라 하는 용역업체/하청. 계약 이상의 업무와 갑질을 일삼으며 책임은 피하는 입주자대표회의/원청. 그리고 파견노동자를 보지 못하는, 보지 않는 입주민/시민.

 《임계장 이야기》의 경비노동자 문제가 지난해 5월~6월 이슈가 되고도 어느새 잊히고 문제가 지속하는 것처럼, 《중간착취의 지옥도》 문제도 계속할 것이다. 아니, 책의 플랫폼 노동 사례처럼 더 악랄하게 진화할 것이다. 부와 권력은 점점 더 몰릴 것이고 착취당하는 자는 더욱 비참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노동은 파편화되어 연대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구조는 승리할 것이다. 가진 자는 바꾸고 싶지 않고 못 가진 자는 바꿀 힘이 없기에.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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