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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Aug 04. 2023

[수수한그림일기]쓰린 속과 즐거움이 혼재된 만남

2023.8.3.

어릴 때부터 내가 쓰던 피아노에 이어 두 번째 업라이트 피아노와 이별이다.

피아노와의 이별은 다른 물건 처분과 다르게 마음 쓰린 무엇이 있다.


꼬마들이 피아노 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층간소음이 신경 쓰여서 늘 문 닫고, 사일런트 페달을 밟으며 살살 치라고 해왔다. 그나마도 6시 이후에는 절대 치지 못하게 하고 긴 시간을 치지 못하게 했다. 나까지 보탤 수 없어서 거의 치지 않았고 가끔 치더라도 마음이 조마조마 편치 않았다. 물론 디지털은 업라이트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마음 편히 치지 못하면 이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요즘 중고피아노 처분이 영 어렵고 값을 쳐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어 알고 있던 차에, 마침 디지털 피아노 매장이 있어 들어가서 구경해 봤고 피아노 처분까지 해준다기에 무엇에 홀린 듯 디지털 피아노 계약을 하고 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대강의 지식을 가지고 구매를 한 뒤 디지털피아노 카페에 가입하고 본격적인 공부를 그제야 시작한 것이다. 차라리 공부를 하지 않았을 걸.

그 카페에서는 일제 피아노만이 답이었기에 나의 선택은 꽤나 어리석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럴수록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짝꿍이 말하였다. 모든 구매가 최상의 답을 가질 수는 없다고.


 나의 시끄러운 속과 상관없이 꼬마들을 포함하여 나까지 세 여자는 앞다투어 피아노를 치고 있다. 거실에 두었더니 한결 더 자주 앉게 되어 책 읽다가 느닷없이 치고 밥 먼저 먹은 사람이 치고 그런 식이다. 그리고 꼭 누가 치고 있을 때 치고 싶어 줄을 서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피아노 살 때 주었던 방음매트 아래 요가 매트와 안 쓰는 카펫까지 접어 넣어 타건 소음을 예방해서 한결 마음 편하게 치고 있다.


 주로 해드폰을 끼고 치고 있는데 스피커 소리보다 좋고 잘 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나보다 연주를 훨씬 잘하는 사람의 연주를 그저 들으면 되는데 더 서투른 내 연주가 왜 더 재미있고 즐거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글 올리고 한 판 더 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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