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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Apr 15. 2024

내 방식의 기억

기억은 힘이 세지

2015.4.16 일기
낮에 잰의 점심을 먹이며 울어버렸다.

장조림에 밥을 비벼 먹이는데,
참새처럼 쩍쩍 입을 잘도 벌리며 받아먹는거다.
코를 찡긋거리며 맛있다는 시늉을 하며 쩝쩝대며..
나는 내 손을 쪽쪽 빨아가며, 아이의 밥에 고기도 얹고 양파도 얹어가며 입에 넣어주고 그러면서 울고 말았다.

내가 그 아이들의 엄마였다면.
오늘 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엄마들은 나처럼 내 손을 쪽쪽 빨아가며,
내 새끼 입안에 이 음식을 얼마나 넣어주고 싶을까.



2016.4.16 일기
장조림을 아기새같이 받아먹었던 나의 잰은 부쩍 자라 이제 어린이집에서 김치까지 먹고 오는 아가가 되었다.

나처럼 장조림도 먹이고, 김치도 먹이고,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얹어 그렇게 키워낸 아이들이 홀연히 떠났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키운 아이들을 보냈고,
내가 살아본 시간들을 키워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을 보냈다.

잃어도 되는 자식을 가진 그런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오늘도 내 새끼 입에 넣을 밥을 짓는다.



나는 매일 이 날이 되면 내 일기를 꺼내어 읽어본다.
그러면
작은 아기를 껴안고 거실로 나와 망연히 티비를 바라보던 2014년의 믿을 수 없는 그날도
꺽꺽거리며 울며 내 새끼 입에 장조림을 넣어주던 그날도 다시 돌아온다.
오늘은 '기억은 힘이 세지' 이 문구를 읽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말을 믿어 버리고 싶어서 내 일기를 다시 읽고 왔다.
내가 할 수 있는게 기억 뿐인데 이것이 힘이 세다니
너무나 미안하고, 이 말에 내가 되려 고맙고, 내가 가장 잘 기억할 수 나의 방식으로 기억해본다.


나의 4월 16일들을.




#기억은힘이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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