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재)
정말 브런치 매일 쓰는 분들은 존경할만한 분들이라고 늘 생각한다. 늘 자신 안에 생각과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에 1일 1브런치가 가능한 것 같다. 나는 별 생각도 없고 사는 대로 살고 가끔 일기쓰듯 써서 그런지 매일 글을 쓰는 이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날 일기다. 전반적으로 행복했다. 탄탄멘도 먹고 찜질방도 갔으니. 하지만 짧은시간 감정과 생각이 요동쳐 살면서 꼭 기억하고 싶은 일이기에 적어보려 한다.
(을질과 병질)
축복받은 성탄절 당일, 토익을 보고 온 불쌍한 짐승과 열심히 배송을 마친 안 씻은 짐승은 찜질방에 가 피로를 풀기로 했다. 일이 끝나는 곳이 우연히도 우리 집 근처라 잽싸게 튀어나와 공유와 공효진이 그려진 쓱(SSG)카에 몸을 싣고 가까운 찜질방을 찾았다. 형은 탑차를 세워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길래 조수석에서 찜질방에 전화를 했다.
“1톤 봉고도 상관없죠?”
“예, 뭐 일찍 오셔서 세우시면 됩니다.”
전화를 마치고 그냥 차 세우면 되지 뭐 걱정이냐고, 고객 쫓아내겠냐고 했지만 형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차장에 빈 칸을 보고 들어가는데 뜬금없이 대기실에서 경비아저씨가 나와 차를 막아 용무를 물어봤다.
찜질하러왔다, 사장님이랑도 얘기가 되었다 말을 해도 경비아저씨는 CCTV를 가린다는 둥, 야외 주차장이지만 차가 높아서 안 된다는 둥 이상한 말씀을 하시며 쫓아냈다. 냅다 내려서 싸우려고 했지만 형은 내 손목을 잡았고 결국 하릴없이 주차장에서 쫓겨나 형 집까지 10km를 달려 노란 쓱카를 집에 세우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가벼운 존재)
착잡했다. 차 외부에 그려진 공유와 공효진은 밝게 웃고 있었지만 내부의 우리는 웃지 못했다. 외부 도장에 공유가 그려져 있어 가끔 중학생들이 차 앞에서 사진도 찍기에 학교 앞에서는 환영받았지만 찜질방 주차장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을질과 병질 아닐까? 생각해보면 진짜 갑은 을과 병에게 갑질을 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일요일 성탄절에 일하는 이들 중 갑이 어디 있겠는가? 보통을 아니면 병, 더 나아가 정이겠지. 우리 사회에서 정말 가벼운 존재들이다.
무게는 질량에 중력장 값을 곱한 값이다. 때문에 중력장 값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낮은 물체가 적합한데 우리사회의 장도 질량이 낮은 이들이 그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는 칼럼이 불현 듯 떠올랐다. 최근 미국에서 유학하다 병역문제로 한국에 온 지인과의 대화도 떠올랐다. 인종차별은 암묵적인 1등 시민인 백인들이 하지 않는다. 2,3,4등 시민인 흑인과 동양인, 멕시칸 간에 인종차별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을질과 병질이다.
(화내는 것도 특권인가?)
괜히 우울해서 차안에서 계속 이상한 말을 했다. 최근에 연습하는 더킹의 정우성 성대모사도 하고, 영부인 성대모사도 하면서 크리스마스 퇴근길을 내달렸다.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되는 형은 뭔가 부자연스런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굳이 화내고 싸우고 안 그래도 돼요. 아파트나 이런데서도 비슷해서 그냥 그래요”
화내고 싸울 수 있는 것도 권리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느껴졌다. 나야 뭐 책임질게 없지만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문제를 일으키면 원청이 운수사를 압박하고 운수사는 기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좋은 게 좋은거다’라는 격언이 동등한 관계에서 일어난 갈등을 해결하는 말이 아닌, 갑을 관계에서 병,정이 울분을 참아내는 말이란 생각을 했다.
(행복)
뭐 어찌되었건 찜질방은 갔다. 최근에 손목이 아프대서 소금방에 손도 담그고, 감식초에 계란도 배터지게 먹었다. 짧은 2시간도 안 되는 일을 조명해서 그런지 글이 조금 우울해 보이지만 사실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