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필기를 봤다
12월 18일 서울신문 필기시험을 봤다. 사실 붙은걸 모르고 있었는데 시험 2일 전, 핸드폰으로 Web 발신이 와서 알게 되었다. 이메일을 잘 사용하지 않는 계정으로 설정해놓아서 확인을 못했던 것이다. 정말 큰일날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은 2일간 부랴부랴 준비했다. 내 인생 2번째 언론사 시험이라 경건한 마음으로 유튜브에 ‘원고지 쓰는 법’부터 정주행하고 글감을 정리했다.
월드컵과 토익준비 때문에 9시는 되어야 일어나곤 했지만 8시 30분까지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시험이었기에 알람을 설정하지 않아도 아침 7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잽싸게 씻고 집 앞 카페에서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손에 들고 역까지 불어가며 마셨다. 사실 토익을 목숨걸고 준비하고 있기도 했고 2일전에 내가 시험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알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마음만큼은 편했다.
새벽 7시 40분 숙명여대 입구 밖은 얼굴 가죽을 찢는 듯한 추위와 바람이 전부였다. 시험장 방향으로 걷다보니 회색 츄리닝에 검정 패딩을 입은 시험 동지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 와중에 아침부터 머리 손질하시고 코트입고 오신 분도 계셨는데 그 부지런함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서울신문 수습사원 필기시험 시험장’이란 현수막이 멀리서 보이자 괜히 걸음이 빨라졌다. 이왕 일찍온 거 돌아다니면서 학교를 구경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굉장히 역사와 전통이 깊은 학교였다. 특히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졸업한 학교이기에 기념비도 있었는데 자부심을 느끼면서 다닐만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최근 구속조사를 받고 계신(?) 우리 과 선배님도 언뜻 생각났다. 선배님,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습니다.
현 정국에 대해 논하는 문제와 저출산 문제가 출제되었다. 1200자 제한이었지만 100분의 시간 압박으로 각각 200자 정도는 비운 것 같다. 결시자가 11명이나 되는 반이었지만 내 답안을 제출하며 다른 응시자들의 답안을 언뜻 봤다. 다들 빡빡이에 글씨도 예쁘게 썼는데 개판인 글씨와 꼬리없는 내 답안이 초라해 보였다. 이미 언시를 통과한 친구가 외워가야 할 부분도 있다는 말을 할 때에는 ‘응, 난 창의력 킹이라 그런 거 없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시험을 경험해보니 그 ‘창의력’마저도 어느 정도 암기가 가미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냥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한 끼에 만원이나 되는 비싼 식사를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원래 미분당을 가려고 했는데 오후 1시 반에 줄선 길이를 보니 앞으로 이곳에서는 밥을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게 유명하다는 순대국밥 집에 갔는데 손수 만든 순대를 3개나 국밥에 넣어준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2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구나. 사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 이런 이벤트도 없을 때에는 그저 토익 끝나면 뭐할지, 무척 공허할 것 같았는데 준비는 잘 못했지만 필기시험이라도 보니 생기는 희망에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같다. 빨리 추운 겨울이 지나고 현장이든 언론사든 일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