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응원할 때 ”대~ 한 민 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등의 구호를 외치고는 합니다. 특히, 구호 뒤의 박수나 추임세는 우리 몸 안에 이식이라도 된 듯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또, 경기 시작 전 경기장에서는 트랜스 픽션의 노래 “승리를 위하여”가 흘러나오기도 하죠. 야구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치어리더들을 필두로 한 선수 응원 구호들과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갈매기”나 한화 이글스의 "나는 행복합니다"와 같은 특징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스포츠와 음악 그리고 구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직장인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관계일 것입니다. 이러한 구호들은 소위 ‘챈트’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특별히 유럽 축구 경기장에서 제가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유럽축구와 음악, 그리고 챈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챈트"
먼저, 챈트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응원 구호“라고 번역되는데, 멜로디와 함께 반복되는 반복적인 구호입니다.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팀이 수비로 전환할 때 불리는 농구의 “디펜스!, 디펜스!” 구호나 상대 투수가 주자 견제를 할 때 외치는 야구팬들의 구호가 그 짧은 예시입니다. 유럽에서 축구를 응원할 때는 보다 긴 챈트들도 종종 활용되는 등 챈트의 특징은 다양합니다.
스포츠에서 챈트가 언제 어디서부터 처음 활용되었는지는 명확히 밝히기 어렵지만, 유럽 축구계에서는 영국 프로축구팀 노리치 시티의 팬들이 불렀던 “On The Ball City”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던 최초의 챈트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이 노래의 원곡은 1890년대에 노리치 지역에서 훗날 팀의 디렉터가 된 Albert T Smith와 지역 교사였던 J.H.Dement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집니다. 노래는 축구팀 노리치 시티가 창단한 1902년 즈음부터 바로 불리게 되었고,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구단 챈트로 사용되어 현재까지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 곡의 특징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가사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인데, 가사의 주된 내용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한 노래가 꾸준히 100여년 간 같은 장소에서 또 같은 의미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챈트를 부르는 것의 보편적인 장점은 운율감 있는 멜로디와 제 각각의 의미가 담긴 가사들을 통해 보다 흥겹게 응원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요. 바로, 팬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그들을 한 집단으로서 끈끈하게 연결해준다는 점입니다. 챈트는 실제로 사람들의 출신성분과 직업에 상관없이 팬들을 한 데 묶는 도구로서 작용합니다. 스포츠 전문 언론 The Athletic의 보도에 따르면, 가수 존 덴버의 “Annie’s Song”은 영국 프로축구 팀 셰필드 유나이티드 팬들의 주요 챈트로 불리는 노래라고 합니다. 대중들에게는 이 곡이 그저 하나의 대중가요에 불과하지만 셰필드 유나이티드 팬들에게는 단순한 대중가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특정집단에의 소속감을 느끼는 요인은 단순히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너머 그 집단이 외부자들과는 다른 특정 관념을 공유한다는 데 있습니다. 앞선 사례와 같이 사회적으로는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그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말입니다.
지난 겨울, 유럽 축구경기장에서
그렇다면, 실제 유럽 경기장에서 음악과 챈트는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을까요? 저는 지난 겨울 두달 간 유럽을 여행하며 AS로마, 파리 생제르맹, FC바르셀로나, 발렌시아의 경기장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가 보았던 유럽 축구경기장들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먼저, 모든 경기장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공통점은 바로 AC/DC나 메탈리카, 롤링 스톤즈 등 록밴드의 음악이 경기 시작 전 흘러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이유에는 록 음악이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과 웅장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주요 티켓 홀더들이 4-50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의 10대시절 가장 유행하였었던 음악인 미국과 영국 록밴드의 음악이 주로 틀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한 20년쯤 뒤에는 BTS의 노래가 유럽축구경기장에서 흘러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각 경기장들의 특별한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AS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 ”Roma, Roma, Roma.”
AS로마의 홈 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의 첫번째 특징은 선수단을 소개할 때 NBA에서 선수를 소개하듯 화려한 네온사인과 음악과 함께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축구경기에서 선수들을 소개할 때 단순히 전광판과 장내 아나운서를 통해 소개하는 것과는 분명 차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다른 특징은 바로 노래 “Roma, Roma, Roma“입니다. 이 노래를 떼창하는 모습은 모든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 A 경기들 중에서도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들 중 하나로 꼽힙니다. 경기 시작 킥오프 직전에 불리는 이 노래는 로마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Antonello Venditti가 만들어 1983년에 처음으로 불렀던 곡입니다. 이는 로마에 대한 헌정곡으로 “로마가 언제나 내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의미의 가사를 담고 있는 감성적인 발라드입니다. 팀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을 드러내는 가사로, 팬들에 의해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를 떄 AS로마의 팬들은 팀의 스카프나 깃발을 흔들며 부르는데 그 모습과 상기되어 있는 선수들의 표정을 교차하며 바라보니, 이 노래 하나로 팬들과 선수단이 하나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전율이 돋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팬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경기의 주심은 경기 준비가 완료되었음에도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노래가 끝나는 그 순간 경기 시작 휘슬을 붑니다.
2. C.F. 발렌시아, 메스타야, 브라스밴드.
우리나라 이강인 선수의 전 소속팀으로도 유명한 발렌시아의 홈 구장인 메스타야 입구에는 서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스탠딩 바들이 참 많습니다. 위치도 주거단지 주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아 대부분의 팬들은 경기 시작 전 여유롭게 찾아와 맥주 한 두잔을 걸치고 경기를 보러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 시작 전부터 얼굴이 붉으스름 해진 팬들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렌시아의 경기장 메스타야에서 찾은 독특한 부분은 브라스밴드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발렌시아 홈팀 응원석 오른쪽 옆에 정장을 갖춰 입은 브라스밴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팀의 응원가에 관악기가 사용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지만, 경기장에 직접 브라스 밴드가 찾아와 노래를 연주하는 모습은 쉽사리 볼 수 없습니다. 보통 북을 활용해 응원을 전개하는데, 관현악 연주에 맞춰 팬들이 챈트를 부르는 모습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전반전이 끝나자 브라스 밴드 전원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여 ‘퇴근했나?’ 싶었으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바로 경기 하프타임에 연주 공연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들은 경기장 동서남북을 다 돌면서 멋진 곡을 연주합니다. 메스타야는 팬들이 축구도 즐기고, 하프타임에는 관악연주도 즐길 수 있는 매우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발렌시아의 가장 흔한 챈트는 “Valencia, Valencia, Valencia”입니다. 팀이자 도시의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것이 이 챈트의 전부이지만 “Simple is the best.” 라고 할까요, 그 단순함 속에 힘이 있습니다. 유순해 보였던 옆자리 청년들이 경기가 시작되자 돌변하여 열광적으로 챈트를 부르며 응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합니다.
3. 파리 생제르맹, 파르크 데 프랑스, 울트라스.
파리 생제르맹(이하 PSG)의 팬들의 열정은 유럽 축구계에서도 매우 유명합니다. PSG의 서포터즈는 “Collectif Ultras Paris”라고 불립니다. 흔히 “울트라스”라고 불리는 이들의 응원은 90분 내내 끊이지 않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서 보니 90분 내내 방방 뛰며 열정적인 응원을 보여주었습니다. 광기에 가까운 응원이라 후반 막바지로 가면 갈수록 경외감도 들었습니다. 울트라스 팬들은 경기날에는 운동하러 갈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들은 지난 겨울에도 “메시를 팔아라.” “네이마르를 팔아라.”등 팀의 유명 선수들의 방출을 요구하는 챈트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등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PSG의 가장 유명한 챈트는 “Ici, c’est Paris!”인데 “여기, 파리가 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파리 시내에 위치한 구단 팬 샵이나 경기장 안에 있는 간이 팬 샵에서 이 챈트 문구가 적힌 머플러를 판매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많은 구단의 팬들이 그러하겠지만, 유독 PSG의 팬들은 “파리”라는 도시와 이 구단을 연결시키며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최고의 도시이자 최고의 축구팀이라는 자부심 일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파리지앵의 모습은 노상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라면, 파르크 데 프랑스에서는 구단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열정적인 모습의 파리지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FC 바르셀로나, 스포티파이 캄프 누, “MÉS QUE UN CLUB”.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FC 바르셀로나는 들어봤을 것입니다. FC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인 스포티파이 캄프 누에 들어가게 되면 좌석 스탠드 위에 새겨진 “MÉS QUE UN CLUB”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클럽의 모토로서 “클럽, 그 이상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모토는 FC 바르셀로나가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글귀입니다. 그들에게 FC 바르셀로나는 단순히 축구 구단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전통과 언어를 상징하는 대상입니다. FC 바르셀로나의 가장 유명한 챈트는 팀의 공식 주제가이기도 한 “Cant del Barça”입니다. 팀의 창설 75주년을 맞아 1974년에 만들어졌으며, 팀의 통합과 승리, 그리고 팀에 대한 헌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카탈루냐어로 된 가사로 불려 팀에 대한 소속감을 넘어 지역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또, 특별한 챈트가 있는데요. 바로 “Independència”라는 챈트입니다. 카탈루냐어로 독립을 의미하는 이 챈트는 카탈루냐의 독립에 대한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챈트는 경기 시작 후 17분 14초가 되었을 때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1714년이 카탈루냐 지역이 부르봉 왕조의 필립 5세의 군대에 함락당해 자주권을 잃게 되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팀의 승리를 바라는 챈트가 아니라, 축구와는 무관한 정치적인 열망을 담은 챈트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렇게 유럽 각 구장들의 응원문화와 챈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챈트의 특징은 나라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보통 팀에 대한 긍정적인 가사가 많고 이탈리아나 남미에서는 보다 직설적이고 강렬한 가사들이 특징적이라고 합니다. 또, 미국은 여러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챈트의 언어도 다양하며 영국은 보통 유머를 가사에 많이 섞는다고 합니다. 제가 느꼈던 우리나라 챈트의 특징은 비교적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보러 가게 되면, 골을 먹거나 선수들이 실수할 때 팬들이 “괜찮아!, 괜찮아!”라는 구호를 외치고는 하는데요. 마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무대 위에서 실수를 했을 때의 팬들의 반응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수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우리만의 방식인 것이죠.
또, Andre Lawn이 본인의 저서 “We Lose Every Week: The History of Football Chanting”에서 밝히길, 챈트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되는 특징을 가진다고 합니다. 마치 오래된 전통 민요들이 구전되어 전해져 온 것과 유사하죠. 이러한 챈트는 유럽축구계에서 각 구장과 구단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주된 요소입니다. 팬들 간의 단결을 견고히 하기도 하며 선수단에게는 힘을 북돋아줍니다. 또, 아들이 태어나면 아버지의 시즌권 자리를 물려주는 유럽축구의 전통이 있듯, 챈트도 과거 세대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중 하나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유튜브 '이스타 TV'. 이스타TV에 출연해 레알마드리드 응원가를 부르는 태사자의 김형준.
과거에는 사실 경기장에 직접 경기를 보러 가지 않으면 챈트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고 SNS사용으로 전 세계적인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그 배타성이 줄어들었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유튜브와 같은 매체를 통해 비싼 티켓 가격이나 거리적 제약 때문에 경기장에 방문하지 못하는 팬들도 챈트를 배우고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무엇도 현장의 분위기를 재현할 순 없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유럽축구의 응원문화인 챈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경기를 관람할 때 경기뿐만 아니라 챈트에도 관심을 갖는다면, 보다 더 재밌게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