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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형의 칼리오페 May 26. 2023

산티아고의 숨겨진 보물

검의 비밀은?

* 라 파바의 기도(Prayer of La Faba)    

 

 “내가 세상의 모든 길을 걷고

 동과 서의 산과 골짜기를 건넌다 해도,

 '나 자신에 이르는 자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 곳에도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홀로 걷는 길은 외롭다.

오세브레이로(O'cebreiro)로 향하는 길은 온통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해발 700m에서 고도를 높여 1300m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미노(camino, 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에서 제일 험로로 통한다. 저녁 8시가 되면 여행자들의 도미토리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가 문을 닫는다고 하니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길 위에서 길을 물을 필요는 없다. ‘나’를 찾아 향하는 까미노(길)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때론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는다. 마치 인생이 그렇듯, 내리막이 있고 오르막이 나타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걷는다. 마을 길을 지나 숲길을 걷다가 보면 어느새 들길이 이어진다.     


'나에게 이르는 자유'     


떠나고 싶은 욕망.

일상의 모든 일을 잊고 대자연을 벗삼아 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일탈과 해방의 꿈이다.


그런 걷기 여행의 대명사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른다. 대서양 가까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이 장장 800킬로미터에 이른다. 다 걸으려면 한 달 이상 걸리는 고된 여정이다. 그런데도 전세계에서 한해 6백만 명이 이곳을 찾아와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코엘류의 ‘순례자’ 중에서)       


원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옛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여정이었다. 중세 이전부터 내려온, 유럽에서 가장 오랜 순례길이다. 예수의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산티아고는 세계 3대 성지가 됐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종교를 떠나,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현대인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짊어진 채 길을 나선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길이 되길”, “너의 길에 행운이 있길”.

순례길을 스쳐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길을 걷는 중에는 암에 걸려 고통받는 사람, 가족이나 연인과 이별한 사람처럼 사연이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어떨 때는 부상 정도가 심해 병원에 긴급히 실려가는 환자도 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이 앞서간 이들의 발길을 따라가며 걷는다. 또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겐 스스로가 이정표가 되어 걷고, 또 걷는다. 한적한 숲길, 너도밤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가 만난 네덜란드인 반두크 씨는 벌써 한 달째, 딸과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있다.   

   

“순례길의 모든 사람들이 천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천사의 이야기를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위해 아빠가 준비한 특별한 여행이라고 했다. 어느새 훌쩍 자란 딸이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서 세상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찾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오늘도 갈 길은 멀다. 멀리 산등성이에 구름이 내려와 앉았다가 금세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숨이 차기 시작한다. 산 위의 마을, 오세브레이로는 해발 1296m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구름인 듯, 안개인 듯, 투명하게 흐르는 기체의 장막을 뚫고 중세의 벽돌 건물 지붕이 솟아올랐다. 첨탑이 햇살에 반짝인다. 신비하고 몽환적인 풍경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당이다. 작고 소박한 실내로 들어서면 긴 나무 의자들이 열 지어 놓여있다. 앞쪽에 야트막하게 걸린 십자가 위에 예수상이 모셔져 있다. 어둠 속 돌벽을 따라 방문자들이 놓고 간 작은 촛불들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누군가를 위해 밝혀 둔 촛불은 포근하고 아름답다. 이 아늑한 공간에 값진 보물이 보관돼 있다.    

       

신비한 보물, 검(劍)의 비밀은?     


이곳은 브라질 작가, 파울루 코엘류(Paulo Coelho)가 소설 <순례자>에서 ‘검(劍)의 비밀’을 발견한 곳이다. 1986년 코엘류는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브라질에 모든 것을 남겨두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찾았다. 이곳에 이르러 검을 발견한 뒤 영적 깨달음을 얻고 순례 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7년, 그의 베스트셀러 작품 <순례자>가 탄생했다.     

코엘류는 <순례자>에서 ‘마음의 검(劍)’을 찾아 떠난다. 검은 그 길의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검을 찾기 위한 순례의 길을 걸으며 숨겨진 인생의 진리를 마주하게 된다. 사실, 순례길을 시작할 때 그의 목적은 오로지 신비한 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순례길을 안내하면서도 검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페트루스의 침묵은 검을 찾고자 하는 코엘류의 욕망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페트루스는 끊임없이 말한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라고. 세상에 신비란 없으며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라고.


코엘류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검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했지만 의미심장하다.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그것이었다.      


“순례의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오직 검이 숨겨져 있는 장소였다. 왜 그것을 찾고 싶어 하는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자문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보상만을 생각하는데 소진되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는 그 욕망의 대상에 아주 확실한 목적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 검의 비밀이었다” (순례자 p. 311.)     


그렇다. 검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코엘류가 까미노를 걸으며 자신의 검으로 할 일을 찾아내니 검이 그에게로 왔다. 세상에 숨겨진 진리는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늘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지만 그 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면 멀지 않은 곳에 꿈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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