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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 Jul 04. 2023

재판 결과를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이유

판단은 신중하게

"재판이 재판다워야 존중하지"


특정 사건에 대한 재판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 (대부분 형량이 너무 낮다는 취지로) 해당 판결을 한 재판부를 비난하는 말들을 듣기 쉽다.


피해자가 판사 가족이어도 저리 재판할 것인가?(이 부분인 앞서 작성한 글에서 다루었다) 공부만 해서 세상물정 모르는 판사들이네 쯧쯧 하는 등의 반응 속에서 항시 침묵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너는 왜 아무런 의견이 없냐고 물으면 김빠지는 말이 되돌아오곤 했었다.


"사건 기록을 안봐서..."


아니 그럼 사건 기록을 꼭 보아야만 재판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건가?

재판부와 당사자 아니고서야 사건 기록을 볼 여지는 거의 없으니, 결국 어떠한 재판도 비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결국 비난의 화살은 그렇게 말한 사람에게로 옮겨가곤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오래된 일이다.


나는 변호사가 된 후 군에 입대하여 군법무관으로 3년간 의무복무를 하였다.

당시 군검사*로 복무하면서 많은 형사사건, 징계사건(징계조사관, 징계간사도 겸직하였다)을 담당하였는데,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과거의 검찰관. 군인, 군무원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군 관련 범죄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검사가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


사건의 내막은... 정말 간단하다. 남자 병사 A가 장난으로 남자 병사 B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몇 회 찌른 행위이다. 그게 전부이다. 피의자도 특별히 그 행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병사 B가 자신이 성적 불쾌감을 느꼈다며 병사 A를 강제추행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군인이 군인을 강제추행했을 경우에는 <형법>상 '강제추행'이 아니라 <군형법>상 '군인등강제추행'이 성립한다는 것이고, 처벌의 수준이 매우 높다. 이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형법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군형법

제92조의3(강제추행) 폭행이나 협박으로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1조(적용대상자) ① 이 법은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대한민국 군인에게 적용한다.
② 제1항에서 “군인”이란 현역에 복무하는 장교, 준사관, 부사관 및 병(兵)을 말한다. 다만, 전환복무(轉換服務) 중인 병은 제외한다.
③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군인에 준하여 이 법을 적용한다
1. 군무원
2. 군적(軍籍)을 가진 군(軍)의 학교의 학생ㆍ생도와 사관후보생ㆍ부사관후보생 및 「병역법」 제57조에 따른 군적을 가지는 재영(在營) 중인 학생
3. 소집되어 복무하고 있는 예비역ㆍ보충역 및 전시근로역인 군인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벌금형도 불가능하고 징역형의 하한이 1년이다. 다시 말해,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 가중되면 1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무시무시한 형벌이다. 성범죄이니 만큼 취업제한, 성범죄자 신상정보등록 등의 부가형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옆구리를 쿡쿡 찌른 행위'를 이런 무시무시한 형벌 규정으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가?


과연 옆구리를 찌른 행위는 성적 불쾌감이 느껴지는 행위인가? 남성이 여성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 경우에 따라 강제추행이 인정될 것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남성-남성 간의 문제라고 달리 보아야 하는가? 피해자에게 물어보더라도 자신은 성적 불쾌감을 심각하게 느껴 잠도 잘 못 잔다고 진술한다. 일단 기소를 하고 군판사에게 판단하는 책임을 떠넘길까? 군사재판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겐 정말 치명적인 일일 것이니 이렇게 가볍게 생각할 건 아닌 것 같다. 그럼 기소유예*를? 기소유예의 경우에는 어찌됐든 죄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판단이고 수사경력자료에도 일정 기간 남는 만큼 가볍게 할 처분은 아니다.


나는 결국 피해자의 강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와의 평소 관계, 해당 행위가 이루어지게 된 경위, 주변인들의 진술, 군인등강제추행죄의 법정형, 징계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사회통념상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고 그 밖에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증거불충분)*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기소유예: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볼 때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게 가혹하다고 하여 검사가 기소하지 않는 불기소처분의 일종)

(혐의없음: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의 일종)


그런데...!


마침 국회 국정감사 시즌이라 군부대의 성폭행 사건 일체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국방부 공문이 내려왔고, 부대 지휘부에서는 심각한 성범죄를 이런 식으로(혐의없음) 처리하는게 과연 타당하느냐는 하문이 하달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에는 사건의 실체에 대한 서술 없이 "성범죄(군인등강제추행):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이라고만 기재하여 보고되므로,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군대에서 자체적으로 성범죄를 덮는듯한 인상이 생기기도 하였다. 특히, 언론보도가 있기라도 하면, (실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군부대의 전형적인 성범죄 덮기라는 식으로 운운할 것이 눈에 선하였다. 그럼에도 피의자 한 명의 인생이 달릴 문제인데, 외부 압력이 무섭다고 하여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단을 거스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보았고, 지휘부도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었던 지라 걱정만 내비췄을 분 철저히 징계조치를 하라고 한 것 외에 별다른 하명은 없었다.


다행히 위 일에 대하여 국회의 별다른 문책이나 언론보도는 없었다. 그래도 이 일을 겪으면서 예전에 "사건 기록을 안봐서..." 판단을 보류하겠다는 지인의 발언이 새삼 떠올랐다언론에서 겉으로만 드러나는 일들만 보도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이를 근거로 비난하는게 얼마나 부적절한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사건 기록을 꼭 보아야만 재판 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재판부가 왜 그러한 판단을 하였는지,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고 있는 내용은 없는 것인지를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다짐에는 아래 추가적으로 전해들은 사건들에 대한 고민도 일조하였다.


술자리에서 금전문제로 다투다가 소주병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려쳐 상해를 가한 다음, 일부 변제 명목으로 피해자의 지갑에서 수십 만원을 강취한 행위로 <형법>상 특수강도(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되어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3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어(이 경우 집행유예가 불가능하여 실형이 선고될 수밖에 없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경우에만 부과가 가능하다) 마침 술을 많이 마신 것을 보고 작량 감경 후 음주감경(심신미약)을 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는 전직 군판사님의 이야기

=> "음주감경"이라는 부분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구심을 들게 한 사건이다.


부하 병사가 옆에 있는 자리에서 간부가 혼잣말로 "사제(민간) 여자친구 만나고 싶다"라고 한 것을 두고, 성희롱으로 신고되어 징계를 받게 된 군인("성희롱"은 징계양정이 '정직'이 기본이고, 아무리 감경을 해도 '감봉'을 하여야 한다. 가장 경한 징계인 '견책'만 나와도 진급길이 막히는 군 조직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위 말 한마디로 평생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에 대해 성희롱이 아닌 '(영내)폭언'으로 보아 견책의 징계를 하였다는 모 법무관의 이야기

=> 피해자는 자신이 성적 수치심을 강하게 입었는데 그 점이 무시되었다고 언론에 제보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고 한다.



2023. 7.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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