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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지혜 Sep 27. 2021

01 나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지웠다

프롤로그 01

나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지웠다



4년 전 어느 봄날 20대 마지막 소개팅을 했다. 5년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처음 맞이한 봄이었다. 그 사이 몇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지만 어엿한 연인이 되기엔 부족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누굴 만나도 쏘쏘~’였다. 아니 쏘쏘만큼도 안됐나. 더 이상 사람을 찾고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쌓고 싶지 않았다. 헤어짐을 고민하게 되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했거나 결혼을 약속한 안정된 커플을 보며 나도 그저 내 편이 있었으면 싶었다. 곧 서른이었다.



그즈음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해야 할까? 기름이 떨어져 덜덜거리는 차 안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핸들만 꽉 쥐고 꼼짝 않는 사람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미련하게 멈춰서 있었다. 많이 지쳐 있었고 버틸 만큼 버틴 지경이었다. 인간관계는 진작에 체념했고, 회사는 휴직하고 돌아왔지만 곧 다시 퇴사 보고 할 예정이었다. 내 안의 힘이란 건 이미 다 써버린 모양이었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본 건 연애였다. 물론 내가 어쩌려는 건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둘러싼 멈춤 표지판을 치우곤 그 지경에서 날 꺼내 주길 바랐다.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그를 위해 한껏 노력할 작정이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지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개팅 후 주선자에게 “건강한 청년 같아~! 괜찮은 사람이네.”라고 말했다. 그 밖에 별다른 말을 덧붙일만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사귀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두 달 뒤였다. 강한 확신을 주진 못했지만 강한 적당함을 확신케 해주었기에. 결혼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마지막 연애이길 바라며. 무엇보다 그와 함께 할 미래의 평화로운 나를 꿈꾸며. 비뚤어진 마음을 안고 연애를 시작했다. 꼭 들어맞는 건 없었지만 시작하는 연애의 설렘과 달콤함에 취하기에 충분했다. 문제없는 연인으로 잘 지낼 수 있었다. 한동안은.


머지않아 공허하고 답답해졌다. 연애관도 달랐고 기본 성향도 달랐다.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소함도 결국 큰 문제가 돼버렸다. 문제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일이 없단 거였다. 좋게 좋게 지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니 꾹꾹 누르고 그에게 맞춰 지냈다. 나 혼자만의 맞춤이란 게 문제였지만. ‘또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나, 어떻게 알아가나, 어떻게 시작하나. 시작할 만큼 좋아하는 감정 느끼기는 어디 쉽나.’ 이런 푸념들이 그에게 느낀 서운함을 곧잘 이겨버렸다. 그래, 그냥 이렇게 2년쯤 사귀다 결혼하면 좋겠는데 싶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싶었다.


대가를 바란 음흉한 친절을 베풀곤 기대했다.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반응이 없자 터져 버린 건 사귄 지 6개월 만이었다. 널 위해 이렇게나 참았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고 쏟아내고 퍼부었다. 지혜롭게 갈등을 풀만큼 현명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해볼 힘도 없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만나 불만을 칙칙하게 주고받길 2개월, 결국 헤어졌다. 헤어질 줄 몰랐던 그날, 헤어졌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쏘아붙이며 불같이 끝내 보긴 처음이었다. 8개월의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비겁하고 치졸한 인내는 그렇게 끝장났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말한 것도 나, 연락하고 싶어 끙끙대다 주선자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도 나였다. 헤어지고 한 달쯤, 꽤 악착같이 힘들어했다. 퇴사한 지 5개월 된 백수라 맘 놓고 슬퍼할 시간이 넘쳤다. 밤낮없이 울며불며 누구에게든 내 마음을 늘어놓으려 했다. 말할 사람이 없을 땐 인터넷에 의지했다. 헤어진 연인과 재회하는 방법을 찾아 읽거나 연인과 헤어지길 잘한 이유를 찾아 읽었다. 끝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끝내고 싶어 안달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며 그와의 시간이 늘어뜨려 놓은 그늘 안에서 버둥댔다. 목 놓아 울었다. 서러운 서른이었다. 이별한 뒤에야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게 됐다고 꽤 많이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속말하며 후회했다.고 착각했다. 그와 헤어지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나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얼마 못 가 헤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짧은 연애를 몇 번 더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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