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지혜 Oct 19. 2021

05 동네

1부 익숙해서 두려운 것

동네


나는 이십몇 년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살기 좋은 동네 다. 집 앞에 나가면 흩날리거나 단단한 식물들도 많고 만둣집, 떡볶이집, 카페, 문방구도 있고 소방서, 파출소, 보건소, 우체국도 있다. 


퇴사하고 한동안 집 앞 공원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오천 원짜리 백반정식을 먹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소화할 겸 다시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있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기도 했다. 오랜만에 써보는 시였다.


나는 동네에 친구가 없다. 집에서 초등학교는 1시간 넘게, 중학교는 50분 넘게, 고등학교는 30분 넘게 걸렸다. 지금은 전철이 있어 훨씬 가까운 거리지만 그땐 버스밖에 없었다. 늘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숫기가 없고 쑥스러움도 많은 아이였는데 도전은 잘했다. 그렇게 해야만 관심받을 수 있단 걸 알았다. 어찌어찌하여 친구들을 사귀어도 마음을 다 주지 못했다. 무서웠다. 떠날까 봐. 전학은 한 번도 간 적 없지만 거리가 먼 학교로 떨어져서 늘 혼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재수, 편입, 편입 재수를 하면서 혼자만의 굴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편입학원 옥상에서 옥상달빛의 <없는 게 메리트>를 부르며 영어 단어를 외우다 햇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친구는 있었지만 ‘친구일까?’라고 생각했다. 외롭기는 쉬웠으나 외로움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아무도 외로움에 스러지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난 계속 영어 시험공부나 자기소개서 잘 쓰는 방법을 위해 시간을 쏟았다.


어릴 적부터 나의 고민이나 생각은 쓸데없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비칠 때가 많았다.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떠나겠지 하며 씁쓸한 두려움에 빠지곤 했다. 시간이 흘러 정규직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극도의 불안감과 압박감을 느꼈다. 회사는 나를 인정해 줬다. 그래서 무서웠다. 인정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해내야 하는데 기대에 못 미칠까 봐 두려워서 숨고 싶었다. 덕분에 사무실에서 응급실로 실려 가던 날 다행이다 싶었다. ‘나 놀고 있는 것 아니에요, 애쓰고 있어요.’를 증명 해 보일 수 있었으니까. 엄마 아빠는 아주 바빴다. 늘 바빴고 여전히 바쁘다. 내가 이런저런 시간을 겪는 동안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동네에 살 수 있도록 집세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엄마 아빠는 늘 바빴다. 그만큼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너무나 힘든 사이다. 부모님 덕분에 나는 꽤 똑 부러진 아이로 자랐다. 나의 실용적인 모습은 부모님 덕분에 갖춰진 게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관두고 돌아오니 여전히 동네가 내 곁에 있다. 그 동네에 여전히 내가 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동네와도 안녕하겠지.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안했던 마음과 달리 한 곳 한 집에서 머물 수 있었던 건 꽤 행운이었지. 삶은 언제나 복잡하고 단순하다.

작가의 이전글 04 결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