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야기하는 영화
한때, 영화를 좋아해 고전 영화나 명작 영화는 놓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듯이 지적 허영심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지적 허영심에서 비롯된 지식에 대한 욕구가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결합되어 자기 계발과 배움의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잘난 척하는 기분을 조금 감추면서, 이 명분을 빌려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삶이 변화하면서 인생 영화도 바뀐다. 인간의 모순에 대해 고민하던 때는 라쇼몽, 순수한 사랑을 동경할 때는 라푼젤, 현실에 치여 순수함이 상처받을 때는 박하사탕, 마음에 여유가 생겨 블록버스터의 통찰을 즐기게 될 때는 다크 나이트와 퓨리오사. 그리고 복잡한 세상과 인간을 고민하는 지금, 오펜하이머가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핵무기를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오펜하이머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대학 시절, 극심한 스트레스로 교수의 사과에 독을 주입했다가 계획을 철회한 일. 새로운 지식을 찾기 위해 완전히 낯선 미국으로 떠나고,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경험. 진이라는 여성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캐서린과 결혼하는 모습. 오펜하이머의 이러한 모습들은 찌질해 보이면서도 대담해 보이기도 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두려움에 철회하기도 하며, 때로는 삶의 큰 전환을 위해 타국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이 인간적이었다.
사랑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진과 사랑에 빠지면서도 캐서린과 결혼했지만, 전 연인을 잊지 못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중요한 인간적 요소 중 하나였다. 캐서린의 전 남편이 이데올로기를 위해 전장에 나가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오펜하이머도 공산주의에 잠시 빠졌지만 결국 연합군의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가 된다. 이 프로젝트 또한 순탄치 않았다. 핵분열을 위한 계산과 실험의 반복, 동료들과의 갈등과 오해, 정치적 모략과 시기까지 – 오펜하이머의 상황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복잡함을 닮아 있었다.
결국 핵무기는 완성되어 일본에 투하된다. 내적 충격을 겪었음에도 겉으로는 핵무기 완성을 축하했던 오펜하이머. 그가 말한 "내 손에 피가 묻었다"는 표현은, 그가 걸어온 길과 인간의 내면 갈등을 대변한다. 그러나 정치의 냉혹한 세계는 그를 환영하지 않았고, 매카시즘이 일어난 시기에 오펜하이머는 배신과 모략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는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주고 벌을 받았던 것처럼, 오펜하이머도 세상에 새로운 힘을 주고 대가를 치렀다.
이 영화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는 감정적 실수를 하고, 순간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빠졌다가 후회하고, 사랑에 감정적으로 치우쳐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과를 내면 질투와 오해에 휩싸이는 모습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고, 오펜하이머는 나에게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한 영화로 남았다.
내가 쓴 ‘루나의 꿈 이야기’도 오펜하이머에서 얻은 통찰이 많이 녹아 있다. 이 영화에서 얻은 통찰들이 나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오펜하이머는 나에게 있어 진정한 인생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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