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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Apr 02. 2022

암 환자 서포트 그룹 III

혜선,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다

    간암 혹은 담관암으로 진단을 받은 환자가 콜롬비아 대학병원의 간 이식 전문의인 닥터 이만드의 집도로  수술 스케줄이 잡힌 것을 컴퓨터에서 보았다. 나는 간의 2분의 1과 담관을 절제하는 수술이라는 기록을 먼저 살펴보았다. 아직 젊은 나이의 여자가 안됐구나, 하는 마음으로 수술 후 회복실에 들렀으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깊이 잠들어 있는 환자의 모습을 흘깃 보았을 뿐이다. 다음번에 병실에 들렀을 때는 옆에 어느 목사님이 기도 중이어서 그냥 나왔는데 오늘 아침 병실에 들어가니 창백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눈을 뜨고 나를 보는데 깜짝 놀랐다. 후배 김혜선이었다. 


혜선이는 25년 전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착하고 신심이 두텁고  똑똑한 여자로, 나와 아주 가깝게 지냈던 터였다. 그때 보험회사 에이전트였던 그에게 나는 물론 주위의 많은 사람을 소개해줘 보험을 들게 했었는데 확실하고 똑똑하게 일 처리를 해서 모두들 좋아했다. 

남편은 좋은 가정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 훤칠한 청년이었다. 다만 한국에서 돈을 얻어다 사업을 벌였는데 아무 경험 없이 빛 좋은 개살구만 찾아다니며 사장 노릇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될 일이 없었다. 혜선이는 열심히 보험을 팔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댔다. 성품이 좋고 실력이 있는지라 많은 실적을 올려 겉으로 보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때 그들에게는 두 살 된 딸과 네 살 된 아들아이가 있었는데 친정어머니가 와서 살림을 도맡아 해 주고 계셨다. 그리고는 혜선 남편의 새로운 사업 때문에 어디론가 이사를 하고 소식이 끊겼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남편에게 젊고 예쁜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때 혜선이가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를 붙잡고 자신의 고통을 나누고 싶은데 언니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남편의 사업이 잘 안 되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업이란 그러다가도 잘될 수도 있는 터였다. 그런데 사업을 한다고 한국에 드나들다가 여자를 만나 정신이 빠졌다는 것이다. 나는 모른 척하고 기다리라는 말밖에 해 줄 말이 없었다. 전에 철없던 시절, 한아파트에 살던 여자가 남편이 여자가 생겼다고 하소연하는데 당장 헤어져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다가 그 남편한테 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 후에 그 부부는 역시나 헤어졌지만, 일단은 참고 살아보라고 조언해주는 것이 안전하다는 게 내 경험의 교훈이다. 


그 후 혜선이는 결국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살았다. 아무리 실력과 능력이 있어도 혼자 외국 땅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는 봄옷 세일한다고, 마땅한 것 있으면 저같이 사는 사람은 이렇게 세일할 때 사놓아야 내년 봄에 잘 입을 수 있다고 하며 함께 하하, 하고 웃었었다. 아이들 데리고 끝까지 뒷바라지해 주시던 어머니를 2년 전 저세상으로 보내고 이제는 하나님 모시고 잘살고 있어요, 하더니 병원 침대에서 수술 후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르핀에 취해 몽롱한 상태의 혜선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곁에는 귀여운 아기였던 딸 데비가 멋진 숙녀가 되어 엄마 병실을 줄곧 지키고 있었다. 너무나 잘 자란 모습이다. 어려운 투병이 수술 후에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고 있던 탓일까…. 만난 장소가 장소니만큼 마음이 무겁고 심란하다.   


  “어쩐 일이야?” 


간신히 눈을 뜬 혜선이가 나를 알아보고 반가운 내색을 하며 손을 잡는다. 혜선이의 말에 의하면 약 한 달쯤 전에 매년 한 번씩 하는 정기 검진을 했다고 한다. 그때 위내시경과 오랜만에 장내시경까지 했는데 결과가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즈음 이상하게 등이 가끔 아파 파스도 붙여보고 찜질도 해보던 중이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담당 의사는 별일 아닐 터이니 지속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돌아와서 가까운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이왕 건강 진단을 하는 김에 복부 CT 촬영을 해보라고 권했다. 의사에게 부탁해서 처방전을 받아 복부 CT를 찍으니 무언가가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그 소견을 읽은 의사가 간 전문의인 닥터 현에게 혜선이를 보냈다. 닥터 현은 간 일부와 담관에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다른 조직 검사는 필요 없었다. 닥터 현은 콜롬비아대학의 간 이식 수술 전문의인 닥터 이만드에게 진료 차트를 보내 수술을 의뢰했다. 이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수술은 아주 잘 마무리되었다. 수술 후 보험회사에서 허용하는 5일간의 입원 기간, 혜선이는 줄곧 모르핀을 맞으며 통증을 견뎌야 했다. 정말 끔찍한 고통이라고 했다.  


  “살짝 다쳐서 피만 나도 아픈데 허리 한쪽을 가르고 잘라내고 꿰맸으니 그 고통은 당연한 거야. 그러나 조금씩 나아질 테니 조금만 참아라.”  


그 말을 하면서 나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항상 환하게 웃는 싱싱하던 혜선이를 알고 있는 나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수술 한 달 후부터 혜선이의 항암치료는 방사선 치료와 병행되었다. 등이 좀 아파 검사해보았던 것에 불과한데 생소하고 섬뜩한 병명이 내려지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뎌내야 했는데 힘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까지 해 가며 바짝 말랐던 얼굴은 스테로이드로 인해 퉁퉁 부어오르더니 끝내는 다리가 아파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두어 달 지났을까... CT를 찍으러 온 혜선은 요즈음 이상하게 등뼈가 아픈 증세가 감지되는데 처음으로 두렵다는 말을 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도, 수술받을 때나 항암 치료받을 때도 몸의 고통을 느껴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등뼈에 이상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두려워요.” 


그 말을 하는 혜선의 얼굴은 절박해 보였다.  


  “웬만큼 회복되면 직장에 다시 나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안 될 것 같아요." 


마음속에 찬 기운이 스쳐 간다. 뼈로 전이된 것일까...? 그만해도 일찍 발견되어 수술까지 잘했는데 어느 틈에 뼈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면… 뼈의 암은 진통제도 효력이 없다던데 고통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나는 통증 전문의 닥터 박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만약 통증이 너무 심해지면 닥터 박에게 가서 주사 맞도록 해.” 


그다음을 생각하기에는 혜선이 너무 젊다. 아이들이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고 엄마가 필요하다. 아직은 할  일이 많다. 아무도 세상에 살다 가며 '나는 마무리를 다 잘 끝냈습니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인 수명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암이란, 예고를 하면서 특정인에게 서서히 다가오지는 않는다. 생명이 있는 모든 물체의 근본 매체인 세포가 갑자기 이상한 분열을 제멋대로 일으켜 튀어나오기도 하고 서서히 숨어서 잠행하기도 하는, 아직은 인간보다는 신의 영역에 있는 질병이다.  


  “매일매일을 당연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보니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던 나날들이 갑자기 너무나 그리워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왜 그렇게 조바심치며 잡아보려고 애를 쓰며 살았는지….” 

  “이제껏 잘 헤쳐 나온 길이니, 앞으로의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꼭 이겨 내야 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혜선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의 모범생답게 의사의 지시에 따라 6개월에 한 번 건강 검진을 놓친 적이 없었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안 좋은 음식은 눈도 돌리지 않으며 성실한 A+ 인간으로 살아온 혜선이. 백화점에서 세일한다고 사놓은 봄옷을 입을 수는 있을 것인가…. 그 몸속에서 어떤 반란이 일어난 것일까….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이 모든 생각들에 마음이 답답해져 와 나는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Hang on, hang on…, 꾹 참고 견뎌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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