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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Apr 29. 2022

통증, 그 무서움

    마치 번개가 치는 듯 날카롭고 선뜻한 통증이 머리 꼭대기에서 귀 뒤로 내리꽂히며 목을 지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귓속을 날카로운 금속으로 후벼파는 듯한 통증이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이를 악물었으나 비명이 잇사이를 뚫고 튀어나왔다. 고통이 심하면 눈물이 나오게 되어있는 것일까?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렇게 해서 머리가 터져버리는것인가, 생각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찌륵, 찌륵, 누군가가 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는 북소리에 맞추어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는 듯, 공격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핏줄이 터진 것일까? 아니면 암이 자라고 있는 것일까…? 생각은 속도를 내어 달리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통증은 2, 3일 전부터 스믈스믈 다가왔다. 처음에는 오른쪽 귀 뒷쪽에서 쿠욱, 쿠욱, 심심해서 찔러 보듯이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그냥 두통이거니 하다가 조금 심해지는 통에 타이레놀 을 한 알, 두 알... 그러다가 여섯 시간에 한 알씩 먹으라는 엑스트라 스트렝쓰 엑세드린(Extra Strength 

Excedrin)을 두 알씩 두 시간도 안 돼 삼키기 시작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녀는 어렴풋이, 이 통증은 이런 약으로 해결되는 시시한 증상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냉엄한 진단을 스스로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방 안을 구르기 시작했다. 칼로 후벼파는 통증, 뼈를 깎는 아픔, 아픔의 극치 상태를 표현한 모든 단어들을 생각해보는데 그 어떤 단어도 이 통증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는 없었다. 밤이고 낮이고 가릴 틈도 주지 않았다. 진통제가 가져온 어지러움증과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고통으로 흐느적거린지 닷새만에 그녀는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것저것 묻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그녀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진영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적은 파일을 덮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큰 병원에서 MRI 찍어 보시고 전문의의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전에 우선 통증 완화제를 드릴 테니 잡수시도록 하시고요.” 


이진영 씨는 그렇게 의사 앞을 물러 나왔다. 이쯤 해서는 본인의 병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예감이 왔지만 그 예감을 앞지르는 고통은 두려움마저 마비시킬 듯 했다. 말로만 듣던 뇌암이라는 병이 내게 찾아왔나 보다. 머릿속 어딘가에 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혹이 생겨나 자라고 있는 것이구나. 스스로 내린 진단은 거의 확실했고 그 느낌은 참담했다. 혹이 자라서 터져버려 죽을 때까지 지속될 끔찍한 고통. 이틀 후에 약속된 종합 병원 진료실을 찾아갈 때까지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콩알 주워먹듯 털어넣어 혼미한 상태로 지내면서 차라리 그냥 생을 마감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순간순간 하기도 했다. 통증은 얼마나 집요한지 약 

기운에 취해 비몽사몽 헤매는 그녀의 골수 속까지 파고들어 일정하게 두드리는 인디언의 북소리 같이 신경을 자극하였다. 


이진영 씨는 병원에 입원하였다. 극도로 쇠약해진 데다가 탈수까지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후 며칠간 링거를 팔에 붙이고 이 부서 저 부서로 실려 다니며 검사를 받은 그녀에게 담당 의사가 찾아와 자신을 소개한 후 불쑥 물었다.  


  “수두를 앓은 적이 있어요?” 


통증이 압박할 때마다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댄 듯 목소리까지 잠겨버려 말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가 된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엉뚱하게 수두라니, 머리속이 터질 것 같아 죽을 지경인 환자보고 수두를 앓은 적이 있느냐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의사라니…!  


  “잘 모르겠는데요….” 


쥐어짜듯 대답한 그녀에게 의사가 말했다.  


  “저희들의 진단으로는 이진영 씨는 수두의 일종인 대상포진에 걸린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몸 속에 잠복해있던 바이러스가 몸의 상태가 쇠약할 때 몸의 모든 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개 배나 등허리에 작은 포진이 띠처럼 퍼지는데 때로는 얼굴에도 목에도, 귓속에도 머릿속에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진영 씨의 경우는 바로 귓속, 제 3신경이 지나가는 곳에서 포진이 발생해 신경을 건드리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진영 씨는 고통스러운 데다가 진통제 탓으로 혼미한 상태였지만 이 의사의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암은 아니구요?”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쯤이면 이, 아픈 게 사라집니까?” 


의사는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저희가 확실히 대답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환자마다 경우가 다르지만 어쨌든 진단이 대상포진으로 나왔으니 진통제로 통증을 가라앉히도록 하면 서서히 나아지실 겁니다.” 


진통제를 먹다 보면 서서히 나아진다니…. 우선은 암이 아니고 수술같은 것은 할 필요도 없고 시시하게 수두의 일종인 대상포진이라니…! 그러나 우습게 넘겨버리기에는 통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대의 링거를 맞고 진단이 내려진 터라 이진영 씨는 퇴원하게 되었다.  


  “대상포진이래.” 


잔뜩 긴장하고 있던 가족들은 이 진단에 안심한 듯 얼굴들을 펴더니 더이상 환자 취급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왔지만 통증은 요지부동 가라앉지를 않았다. 진단을 받았다는 것 이외에 그녀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잠시 사그러드는 통증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어지러워서 화장실 출입조차 어렵게 만드는 독한 진통제를, 시계 바늘 움직이는 것을 온종일 노려보며 목구멍 속으로 털어넣는 일이 매일의 일과가 되어버린 것은 그녀만의 몫이었다. 그리고 참을성 없는 엄마이며 아내일 뿐이라는, 가족에게서 받는 인식을 억울하게 감내해야 했다. 지속되는 진통제에 속이 쓰려 무엇이라도 씹어 삼켜 위를 조금이라도 채우려면 통증과 함께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씹어 삼켜야했다. 죽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고 그냥 죽어라고 아프기만 한 병. 보다못한 친구가 여기저기 수소문하더니 아픔을 전달하는 신경을 차단시키는 시술을 하는 용한 의사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 정말 그런 시술을 하게 된 것은 대상포진 진단을 받은지 6개월이 지나서였다. 목 뼈 바로 아래에 있는 척추에 에피두럴(epidural:경막외 마취제)을 넣은 주사기를 삽입하여 제 3신경에 전달하는 시술. 시술 도중에 이진영 씨는 기절하고 시술은 중단되었다. 기절에서 깨어난 그녀는 오른편 어깨에서 손가락 끝까지 전기가 오듯 찌릿거리는데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시술하던 의사나 간호사들 모두가 긴장하는 순간이었다.   


  “약이 투여되기 전이니까 별 이상은 없을 겁니다. 스테로이드를 드릴 테니 진정될 거예요.” 


팔이 찌릿거리는 증상은 통증보다 더 무서웠다. 옷이 피부에만 닿아도 비명이 나오는 찌릿거림. 이 찌릿거림은 두 주일 동안 계속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귀 뒤쪽 머리속의 통증이 잊힐 지경이었다.  


  “이제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마지막 통첩을 내렸다. 이진영 씨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인간의 두뇌로 인해 인간이 달에도 가는 세상에 이 한치도 안 되는 귓속 아픈 것 하나 고칠 수가 없다니…. 이제 그녀는 밥보다 소중해진 진통제를 끌어안고 사각사각, 머릿속을 칼로 저미는 통증을 소리로 들으며, 시계바늘을 노려보며, 지옥같은 날들을 살고 있다. 차라리 어느 부분이든 칼로 가르고 꿰메고 아물면 낫는 그런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차라리 암이어서 수술로 제거하고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하고 죽든지 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어느 의사는 이 통증이 2년이나 계속된 경우도 있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2년씩이나…! 그 말을 들을 때 얼마나 끔찍했던가…. 그렇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지금 이진영 씨의 계속되는 통증은 2년 반이나 되었다. 아마 새로운 기록이 될 지도 몰랐다. 가족들조차 이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진영 씨는 수술을 받다가 죽더라도 신경을 건드린다는 그 부위를 열고 들여다보고 싶다. 아무도 그 시술을 할 수 있다는 의사가 없다. 그나마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에 의지하여 보내는 시간에도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통증이 경미하게 사라지면서 찾아오는 어지러움증은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만큼 지독하다. 

대상포진이라는 병명으로 그녀만큼 고통을 받는 케이스는 아주 희소한 케이스라고 했다. 물론 배나 등에 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도 매우 아프다고는 하지만 제 3 신경이 자리잡고 있는 두뇌 속에 생기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지속적인 고통이 있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는 담당 의사로서는 이진경 씨가 실제로는 처음 경험하는 환자라고 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조금이지만, 아주 조금이지만 통증이 무디어진 것에 실낱같은 희망을 실어보면서 네 시간마다 먹을 수 있는 진통제를 먹고 세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한 시간동안 시계 초침 움직이는 순간순간을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노려본다.  


  “그때 암이 아니라고 좋아할 이유가 없었어요. 암이었다면 수술을 했던지 이미 죽어 버렸던지 끝장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나는 숨 쉬고 살아있어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녀의 절규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바늘 끝보다도 작은 세포 하나가 아무 생각도 없이 가장 민감한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도 박탈해버리는 질병. 

대상포진, 정말 무서운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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