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어둡도록 깊고 춥던 지난해 겨울 끄트머리에 찾아든 감기가 그냥 물러가기가 아쉬웠던 듯 기침 한 자락을 남겨놓고 떠나갔다. 처음에는 으슬으슬 춥고 미열이 나며 기침과 함께 여기저기 쑤셔대는 증상과 함께 슬그머니 찾아든 감기 기운이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아둔 덕분에 그냥 수월하게 지나는구나, 싶어 약국에서 감기용 타이레놀을 사서 먹고 콩나물국에 고춧가루 듬뿍 넣어 뜨겁고 매워서 훌훌 불며 땀 나도록 끓여서 먹고 또 오렌지랑 자몽이랑 비타민C 열심히 까먹으면서 그럭저럭 떨어져 가는 감기의 기세를 느끼며 안심했다. 그렇다. 누군가의 주장대로 감기에는 약이 없다. 푸욱 쉬면서 잘 먹기만 하면 된다.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거뜬하게 마침표로 끝을 맺어야 하는데 바빠서 떨구고 갔는지 일부러 놓고 갔는지 찾아들 때는 같이 들어와 놓고는 떠날 때는 기침을 떨구고 간 것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목구멍 근처에서 나오는 밭은기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기침이 겨울 끝자락에서부터 앞뜰의 목련 꽃나무가 탐스러운 꽃송이를 만개시키고 뚜욱, 뚝 떨어져 버린 늦봄까지 마치 사나운 발톱을 가진 아귀처럼 내게 들러붙어 할퀴어댄 것이다. 이따금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기침의 심각성을 눈치챈 것은 친구들과의 어느 모임에서였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이 몇 사람이 모이면 떠드는 축과 조용히 앉아만 있는 축이 있기 마련인데 이 모임은 유난히 말하는 사람보다 듣기만 하며 품위를 지키는 측이 훨씬 우세한 편이었다. 말주변이 별로 없는 편인 나로서는 그래도 이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많은 기회에 떠들어 보려고 시도를 해보는데 안타깝게도 입만 열면 기침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정도는 문제도 아닌 것이 전화를 많이 받는 직장에서 “여보세요”나 “헬로우”를 따라 거침없이 뒤이어 터져 나오는 기침은 재채기를 한번 하기만 해도 “익스큐즈 미”와 “갓 블레스 유”를 챙기는 이 사회에서 기관총을 쏘듯 냅다 기침을 쏟아놓고 헉헉거리며 번번이 “익스큐즈 미”를 해야 하는지 어떨지 알 수가 없게 했다.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건 상대방은 느닷없이 캑캑거리며 쏟아놓는 기침 벼락에 얼마나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시작된 기침은 목구멍이 아프기도 하고 근질거리기도 하면서 가슴뼈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뻐근하기도 하였는데 견딜 수가 없어 의사에게 달려가 진찰을 받고 처방 약을 받았다. 항생제와 기침약이었다.
이 약을 먹는 열흘 동안은 아주 자리보전하고 누워서 혼미한 상태로 지냈는데 반은 자고 반은 깬 상태로 지냈다. 기침약의 특징은 사람을 졸리게 한다는 것도 알았다. 기침의 또 다른 특징은 한밤중에 더욱 요동을 치듯이 터져 나온다는 것인데 기침이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절실한 깨달음을 갖게 하였다. 며칠 동안을 한밤 내내 터져 나오는 기침으로 잠을 잘 수가 없어 일어나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부엌에서부터 아래위층을 오르내리며 서성거리면서 일단 잠을 자면서 기침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한 염원을 품어보며 시곗바늘만 흘끔거리며 밤을 지새웠다.
항생제와 기침약을 다 먹었는데도 기침이 물러갈 기색이 없자 이때부터 닥치는 대로 기침에 효험이 있다는 것은 모조리 먹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가관이었다. 누구든지 기침에 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은 빼놓지 않고 귀담아듣고 시행했다. 우선 용각산을 사서 그 유난히 작은 스푼에 듬뿍듬뿍 퍼서 먹고 배를 껍질째 씻어서 가운데 부분을 칼로 도려낸 다음 그 자리에 꿀을 넣어 그릇에 담아 중탕을 하여 그 즙을 마셨다. 그리고 무를 깍두기처럼 썰어서 꿀과 함께 뭉글하게 끓여서 퍼먹고 은행을 하루에 다섯 알씩 날것으로 먹었다. (꼭 다섯 개 이상은 먹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침 컨디션에 따라 일곱 개 먹을 때도 있고 열 개 먹을 때도 있었다) 기침은 내 머릿속까지 점령해 버렸는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이 오로지 기침 생각뿐이었다.
나는 소설이나 어느 예술 계통의 등장인물 가운데에는 폐병으로 기침을 하다가 죽는 줄거리가 많다는 것도 생각해 냈다. 기침은 대개 비극과 연결되어있는 질병인데 그 비극의 주인공들은 대개 폐병 환자이고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윤기 흐르는 부잣집 영감이나 마나님이 기침을 콜록 콜록 하는 주인공이 되어 비극적으로 죽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30대 불행한 여인 카타리나 이바노프나가 폐병으로 죽어가며 끊임없이 콜록대며 하소연을 한다. 나는 기침을 하면서 넋두리를 하는 것은 대가인 도스토옙스키가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왜냐하면 넋두리보다 기침이 먼저 튀어나와 넋두리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허억허억 목구멍에 도사리고 앉아 또 떠들어봐라, 어림없지, 하듯 틈을 안 주는 것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르 쁘띠 쇼즈”의 가엾은 형 쟈끄는 자신의 병이 깊어진 것을 사랑하는 동생 다니엘이 알게 될 것이 두려워 지붕 밑 한 칸짜리 방에 함께 살면서 터져 나오는 기침을 죽을힘을 다하여 참으려고 애쓴다. 이 장면도 생각해 낸 나는 새삼스럽게 그들 형제가 불쌍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로 비극의 주인공인 양 말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의 처방 약이 바닥이 날 즈음에는 나같이 기침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는 분의 배려로 신용카드만 한 크기의 패치를 얻었는데 그 패치는 밤에 잠도 자게 하고 기침도 멈추게 한다는 묘약이었다. 자기 전에 목 바로 앞에 붙이면 마치 수면제같이 잠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기침을 잊고 잠이 드니 그리 신통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잠잘 때는 기침을 안 하는 것인지 자느라고 모르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패치라는 것이 갖가지 종류별로 다른 냄새가 나는데 처음에는 상큼한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냄새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향내도 너무 지나치면 고약한 것이로구나, 하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생각해 낸 것이 수면제였다. 기침의 위력도 수면제에는 못 당하는지 일단 약 기운으로 잠이 들고 나면 용케도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잠이 들면 기침이 안 나오는 것인지 기침이 나와도 모르고 자는 것인지 영 알 수는 없어도 그 고통을 해결하고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진작에 그 생각을 못 했던 것이 원통할 지경이었다.
그동안에도 계속 기침이 뚝 떨어진다는 조언을 듣는 대로 콩나물 한 접시, 배 4분의 1쪽, 무(배와 양이 같은), 은행 다섯 알(다섯 알 이상을 먹으면 몸에 대단히 해롭다고, 무식한 짓 하지 말라고 결국엔 단단한 엄중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꿀을 같이 섞어 펄펄 끓이다가 뭉글한 불에 또 한동안 두었다가 훌훌 마시고, 콧구멍 속에 칙칙 분사하는 것, 목구멍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이 들어 있는 조그만 통을 입에 물고 흡입하는 것. 그리고 혹 알레르기일 지도 모른다는 추측으로 클라리넥스(Clarinex: 항히스타민제)를 하루에 한 알씩 그리고 이어서는 알레그라(Allegra: 항히스타민제)를 하루에 두 알씩, 말 그대로 좌충우돌 먹고 마시면서 허덕였다. 아무도 권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말똥이라도 좋다면 집어 먹겠다고 말들이 많이 사는 마을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나는 안수 기도도 받았다. 마침 아는 목사님과 어떤 일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만나는 순간부터 터져 나오는 기침을 측은히 여겼는지 내 머리통과 목덜미를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이 기침의 마귀를 물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힘차게 아멘! 을 하였다. 내게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었던가? 기침 마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기침 캔디 광고에 나오는 여자는 한 알을 입에 넣고 단숨에 기침이 멎어 환하게 웃더구먼 나는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노상 기침 캔디를 물고 있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기침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눈여겨본 한 친구가 넌지시 충고를 해왔다. 전에 한 연예인이 감기 끝에 기침이 계속되었는데 견디다 못해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폐암 말기였다더라, 진단받은 후 단지 4개월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던데 너도 어서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는 즉시 4개월 남은 나의 인생을 생각해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공연히 슬퍼지기도 하였는데 이때 느낀 것은 아직은 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의사를 만나 폐암이 아닌가 하는 나의 의견을 조용히 타진하면서 눈치를 살폈는데 바짝 긴장하는 낌새는커녕 콧방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아이 호프 낫(아니었으면 좋겠네요)”하고 힘차게 끝내 버리는 것이었다. 아마 느낌이나 알만한 증상 같은 게 의사에게는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확실한 판단을 내려주는 젊은 의사가 참으로 믿음직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또 나 자신이 들은풍월의 의학 상식으로 내린 진단으로는 내 기침은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가슴을 컹컹 울리며 나오는 수상한 기침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기침 끝에 온 말기 폐암은 목구멍을 간질거리는 따위 유치한 증상은 없는 것이다. 아마 좀 더 육중하고 좀 더 철학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지만 근래에는 별로 만날 기회가 없어 잊혔던 선배가 생각났다. 그분은 기침을 달고 다녔다. 가끔 모임 같은 데서 만나게 되면 꼭 한두 번은 모인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도록 심하게 기침을 해대고는 자신이 하는 기침은 습관성 해수라고 분류를 해놓고는 옮기는 병이 아니라는 즉, 옮을 걱정일랑은 하지 말라는 설명과 당부를 하곤 했는데 나는 그 기침 소리가 정나미가 떨어져 그분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에는 부르지 말라고 딴 사람들을 선동하곤 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방안에서 기침하면 옮게 마련인데 집에나 붙어있지 왜 저리 콜록거리며 돌아다니는가고, 마치 여러 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염려하듯 목에 핏대를 세우곤 했었다. 나는 콜록거리며 소 갈 데 말 갈 데 다 쫓아다니며 누구든지 나의 기침에 신경을 쓰는 듯하면 별 확신도 없으면서 내 기침은 알레르기성 기침이기 때문에 옮지 않는다고 열심히 설명하곤 했다. 왜 그 선배 생각이 났을까? 아! 그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실로 오랜만에 기억의 줄기를 찾고 보니 그분에게 죄송하고 안 된 마음이 늦게 철든 아이처럼 피어오른다. 이제는 보상할 길이 없는 흐른 세월…. 그 선배의 습관성 해수는 완치되었을까? 더는 내게 이것이 명약이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어질 즈음 나는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물에 최면을 걸었다. 지금 내가 먹는 이 음식에 기침을 멎게 하는 물질이 들어 있을지어다. 홀짝, 홀짝 마시는 커피 속에, 또는 후룩후룩 먹는 순두부찌개 속에….
계절이 서서히 바뀌며 창문 밖 앙상하던 가지에 포릇포릇 푸른 물이 오르기 시작할 즈음, 이 끔찍하던 기침이 기세를 잃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서히 사라져가면서도 집요하고 끈질기게 이따금 안간힘을 쓰듯이 기침이 쏟아져 나오는데 마치 운명적으로 소중한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몸부림같이 끈덕이처럼 태풍처럼 들러붙어 나를 흔들어대곤 하였다.
기침에도 진리가 있는 것을 나는 철학자처럼 깨달았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투욱, 떨어지듯 혹은 TV 광고에 나오는 여자가 기침 캔디 한 개 먹고 함박꽃같이 활짝 웃듯 그렇게 단방에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어떤 명의의 처방이라도, 임금만 먹었다는 희귀한 한방약이라도 말처럼 그렇게 단번에 떨어져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 계절을 기침과 지내 보내고 난 후 한동안, 오랫동안 나는 기침이 나를 완전히 떠나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헛기침해보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헛기침이라는 확신을 조심스럽게 스스로 타일러 말하곤 하였다. 나는 태풍처럼 나를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긍휼의 깊은 늪이 자리를 잡은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겪었던 고통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겪는 기침의 고통이 나의 것으로 전해져와 괴로움의 눈으로 그를 보게 되는 늪이다. 그 늪은 고통과 체험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 뿌리를 안고 있는 인간의 늪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