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영 Apr 06. 2022

당신은 누구인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밀밭과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북서부의 한 조용한 마을에 중년의 의사 부부가 새 둥지를 틀었다. 어린 딸 하나를 둔 부부 중 남편은 타운의 한 작은 병원에서 외과의로 진료를 하고 아내는 집에서 소아과를 개업해 환자들을 받았다. 남편은 틈틈이 아내의 병원을 찾아오는 가난한 환자들을 진료비도 받지 않고 돌보아주어 환자들은 점점 늘어갔고, 덕분에 그가 근무하는 병원은 예전보다 두 배 이상의 환자들로 붐비게 되었다. 이윽고 이 고마운 의사의 명성은 이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뿐 아니라 매스컴을 통해서도 알려지게 되어 그는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장소에는 누구보다 일찍 모습을 나타내어 헌신적으로 봉사의 손길을 펴,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하였다. 그는 집 부근, 교인도 별로 없는 낡고 작은 교회에 새벽이면 제일 먼저 가서 기도하곤 했는데 그에 감동한 신자들로 점점 부흥하게 되어 교회도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고 새벽부터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는 곳으로 변모해갔다. 그는 또 의료 선교 그룹을 만들어 멕시코의 한 인디언 마을을 돕고 있었는데 이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자신이 혼자 충당하였다. 게다가 그는 소형 비행기 조종사 면허도 가지고 있어서 전세 낸 비행기로 선교팀을 이끌고 멕시코의 빈민촌이나 외지에 사는 인디언들을 찾아가 치료를 통한 선교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 의사의 선행은 멀리까지 알려졌고 그는 한 지방 TV에 현대판 슈바이처로 소개되었다. 방송에 출연한 그에게, 바쁜 의사로서 이런 일들을 할 때 가장 큰 애로점이 무엇인가, 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가, 하고 사회자가 물었다.  


  “남을 돕는 일 때문에 너무 자주 집을 비우게 되어 아내와 어린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시련입니다.” 


그의 자애로운 미소는 딸과 아내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니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언행에 감동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낯선 남자 둘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이 의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후 남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얼마 후 신문과 방송 등에서 이 의사의 체포 소식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가 15년 전 뉴저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FBI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고 있었던 15년 전 젊은 살인범의 사진과 현대판 슈바이처의 얼굴은 그동안 흐른 세월 탓으로 돌리기에는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마 전문가의 눈은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뉴저지 근해 대서양 해안가에 이상한 자루가 흘러들어왔다. 그 자루 속에는 절단된 시체 토막들이 들어 있었다. 이 부분들만으로는 신원을 파악할 길이 없었다. 이 사체 토막들을 살펴본 검시관은 노련한 외과의의 절단 솜씨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한 의사 아내의 실종이 그녀 가족에 의해 신고되었다. 그리고 즉시 그 의사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이 있었을 즈음에 이 의사가 부근의 한 비행장에서 소형 비행기를 빌렸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용의자로 지목된 의사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때 신문에는 이 용의자가 정말 연기처럼,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렸다고 했다. 이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런데 용케도 TV에서 그의 얼굴을 본 조사관 한 명이 기억을 더듬어 낸 것이다. 그의 체포 기사와 더불어 15년 전의 살인 사건은 그 전모를 드러냈다. 그는 자기 첫째 아내를 살해한 후 목욕탕에서 절단(아주 소량의 피만 흘리는 솜씨로)하여 몇 개의 자루에 나누어 넣은 후 빌린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으로 날아가 바다로 떨구어 넣었다. 그 자루 중 하나가(원통한 영혼이 들어있었던 자루였을까, 밀물에 쓸려서일까) 해안에 흘러들어와 자신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신문 기사에는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그렇게 철저하게 법망을 피해 변신하여 의료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TV에 나가 자신을 공개할 수 있게 하였는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자신의 범죄를 잊은 미숙한 사람은 아닌지, 흥미롭다고도 했다. 그에게 수술을 받았던 많은 환자들은 경악했다. 아내를 죽이고 그 사지를 절단했던 손끝에 의해 내가 수술을 받았다니…!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신문에 사랑하고 존경했을 남편의 끔찍한 과거를 알 수 없었던, 어린 딸과 남겨진 아내의 절규하는 모습이 실렸다.  


  “아…! 당신은 누구인가요?” 


소셜 시큐리티 번호와 생년월일, 부모의 이름, 직업, 출신학교, 현 집 주소, 사진이 있는 운전 면허증...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인가…. 교회에서 함께 선교 그룹을 이끌던 친구가 말했다.  


  “그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온 것이 아닐까요? 지은 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세상에는 법이 있지만, 저로서는 그의 믿을 수 없는 과거를 용서하고 싶어요. 그동안 그는 지옥을 품고 살았을 테니까요, 불 속 같은 지옥을….” 


신문에는 그가 조사관에게 말했다는 한마디가 실려 있었다.  


  “아…. 이제야 내 영혼이 편해졌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슴에 품고 사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작가의 이전글 기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