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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Apr 22. 2022

찾는 사람

    9.11 테러 후 한참 지나서였다. 무너진 건물의 뒤처리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간다는 즈음 신문에 사람을 찾는다는 한 장님 이야기가 실렸다. 9.11 사태 때의 수많은 사연 중 아마 가장 평범한 내용인지도 모른다. 그 장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타인이었고,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단지 그 사람이 앉아 있던 장소와 목소리뿐이었다.  


  “그 사람은 아마 알코올 중독자일 것이며 홈리스(노숙인) 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그 사람이 항상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안전하게 잘 피했는지 그의 안부를 알고 싶어요. 그가 안전하게 잘 피할 수만 있었다면……….” 


그리고 그는 목이 메었다. 이 시각 장애인은 9.11 사태 이전의 그 장소를 지도 그리듯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수년간 매일 아침 여덟 시 삼십 분에 지하철에서 내려 월드트레이드센터 옆 출구로 나온다. 활기차게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몸짓과 발걸음의 부산스러움을 느끼며 그의 일터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 옆 골목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널 때 그는 거기에 그 남자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사람은 이 장님을 보면 신호등 바뀌는 것을 소리쳐 알려준다.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길을 건너도 안전해요.(It’s okay  now).” 


도시의 사거리에는 사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하여 건널목 입구에 장치된 경보기의 진동으로 붉은 신호가 푸른 신호로 바뀌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다. 이 장님은 느낌과 추측으로 이 소리 지르는 사나이가 홈리스인 것을 안다. 그리고 그가 늘 술에 절어있음도 안다. 아주 오래전 그는 그 사나이에게 자신이 보지는 못하지만, 경보기의 진동으로 신호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렇게 수고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 고마움을 표시하며 만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그 순간 그가 맡은 사명을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듯 어김없이 “It’s okay now”를 외치곤 했다. 그리고 9월 11일, 그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그가 소리치는 “It’s okay now”를 들으며 길을 건넜다. 그날 용케도 살아남은 지금, 이 장님은 술에 취해 즉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 사나이의 안부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경보기의 진동만으로는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가 없게 됐어요. 그가 소리 질러 알려주어야만 마음이 놓이게 되었던 거예요. 그에게 한 번도 제대로 고맙다는 표시를 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요….”


세상을 보지 못하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하여 그 사나이는 노상 술에 젖어있는 생활 속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을 것이다.  


  “그에게, 내가 그로 인해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었는지를 말하고 싶어요. 부디 그가 무사히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면…….” 


술에 취해 무너져 내리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앞에 앉아 있다가 안전하게 살아남아 혹, 지금도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 길을 건너면 안전합니다, It’s okay  now!”를 외치고 있지나 않을는지…. 자신을 안내하던 한 홈리스의 안부를 애타게 알고자 하는 한 장님의 이야기를 실은 기사는 ‘그가 신문을 읽을 수는 없어도 만약 누군가가 이 기사를 읽고 그가 찾는 홈리스 알코올 중독자의 안부를 전해줄 수만 있다면 고맙겠다’는 그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안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리고 한 알코올 중독자로 인해 직장을 향해 길을 건너는 한 시각 장애인의 하루를 풍성하게 해 주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다. 이 사나이의 안부를 알 때까지 그는 어둠 속을 걷듯이 그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가 혹 안전하게 그 자리를 피해 살아남았다면…. 한 시각 장애인이 그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다면…. 신문은 그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살면서 내 손이, 혹은 눈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나는 시선을 돌려본 적이 있는지…. 잠시 턱을 괴고 앉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할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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