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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Apr 15. 2022

의료 보험

미국의 경우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고 여기저기서 청구서를 보내요. 내가 응급실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온종일 누워서 기다리다가 그냥 집에 갔는데 이렇게 엄청난 돈을 내라고 청구서를 보내오니 이게 말이 돼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서너 개의 봉투를 들고 내 눈앞에 펼쳐 보이며 따지듯 물었다. 봉투를 받아 살펴보니 병원과 응급실 담당 의사 사무실에서 나간 청구서다. 여기저기서 보내온 청구서들이라고는 하지만 회계 회사에서는 같은 청구서를 때로는 연속적으로 보내기 때문에 이를 잘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은 놀라고 어리둥절해진다.  


“의료 보험이 없으신가요?” 


병원에서 청구서를 받는 환자는 의료 보험이 없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확인을 위해 물어본다.  


“네, 없지요. 그 보험이라는 게 너무 비싸서 어떻게 들겠어요.” 


사실이다. 미국의 의료 보험은 너무 비싸다. 하지만 비싼 이유는 병원에 한 번 들어와 청구서를 받아본 사람은 알게 된다.  


“병원 응급실에는 왜 들어오셨었는데요?”  

“여기저기 아파서 들어왔지요. 그 전날 오후부터 점심을 잘못 먹었는지 배가 아픈 데다 설사가 나고 오한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치료해준 게 없어요, 주사 한 대 놔준 것도 없고요. 그런데 청구서만 엄청나게 보낸 거예요.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고….” 


나는 또다시 시작되는 아주머니의 항변을 거기서 잘랐다.  


“아주머니. 한국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고 여기저기에서 비싼 치료비를 내라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제가 병원에서 일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보험이 없는 미국 사람들한테도 똑같이 이런 청구서가 나가요. 그런 오해는 절대로 하시면 안 돼요.” 


아주머니는 그 말을 하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내가 당면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유난히 그런 면에 예민하다. 나를 뭐로 보고…, 내가 한국인이라고 우습게 보는구나…. 수십 년 전, 한국을 ‘6.25라는 전쟁을 한 나라’라고만 알던 때였더라도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한국인이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구나’하고 단정을 내리고 분개한다. 뿌리 깊은 민족의 자격지심은 여전히 사라질 수 없는 것인지…. 


병원 청구서 내용을 보면 피검사, 엑스레이 촬영은 물론 복부 CT 촬영까지 했다. 그러면 대개 4천, 5천 달러 정도의 청구서가 나간다. 검사 코드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나지만 보험을 가진 환자의 경우엔 대개 그 정도의 금액이 보험 회사로 청구된다. 물론 청구 금액 전액이 병원에 지급되지는 않는다. 각 개인의 보험 내용에 따라 다르다.  


“응급실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하시는데 여기 내역을 보면 피 검사도 하셨고 엑스레이도 찍으셨고 CT 촬영도 하셨네요.”  

“예. 뭐, 피도 빼 가고 무슨 사진도 찍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에요. 주사 한 대 안 맞았어요. 약도 준다고 해놓고는 내가 약방에 가서 내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더라고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나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의사가 주사를 잘 놓아주지 않는 것이 생소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오래전 내가 한국에서 살 때는 감기, 몸살이든지 급체 등에는 주사 한 대면 대번에 아픈 것이 나았다. 그런데 여기는 종이 한 장에 처방 약 하나면 끝이다. 당장 아픈 것이 나았으면 좋겠는데 며칠씩 약을 계속 먹으라고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아주머니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법 문제까지 들고나왔는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이다.  


“배가 아프고 설사가 계속되는 상태에서 퇴원하시지는 않았지요?”  

“좀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었어요. 집에 가서 약을 사 먹어야 했으니까요.” 


아주머니는 엄청난 청구 금액 이외에 자신이 또 돈을 주고 약을 사 먹어야만 했던 것이 억울한 듯했다.  


“그래서 그 약을 먹고 회복은 되었지요?”  

“그건 그렇지요. 그 약으로 병이 나았는지 날 때가 되어서 나았는지는 모르지만….”  


의료 보험 없이 응급실에 들어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집으로 날아온 청구서를 보면 그 금액을 보고 아연실색을 하게 된다. 병원비가 비싸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지라도 그 예상한 금액에 대개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기 때문이다. 입원하게 되면 몇만 달러 단위가 되고 응급실에서 간단한 검사 몇 개 한 것 가지고도 5천 달러 이상은 쉽게 나온다. 나 자신도 병원비 청구액을 보고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오래전 실수로 길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의료 보험을 들어주고는 있었지만, 그 후 청구 내역을 보고 입을 따악 벌리고 말았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회용 종이 슬리퍼를 한번 쓰고 버렸는데 그 청구액이 20달러이고 타이레놀 한 알 먹은 것이 약국에선 한 병을 살 수 있는 값이었다. 보험 회사에서는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청구 금액의 약 4분의 1 정도를 지급한다. 그러나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 청구서를 받고 혹시 숫자가 잘못 찍힌 것이 아닌가 놀라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확인하게 된다. 왜 그렇게 엄청난 금액을 청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청구하는 대로 다 받으면 병원은 정말 돈 속에 파묻힐 것이다. 언젠가 수납 담당 직원에게 물었다가 '그 청구액은 그냥 숫자에 불과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들었다.  


“아주머니, 다급하게 몸이 아파서 응급실에 들어오실 때는 아픈 것만 나을 수 있다면 돈은 얼마가 되더라도 좋겠다고 생각하셨지요?” 


아주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대답 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응급실은 사람이 죽는가 사는가를 다루는 장소입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극한 상황의 모든 돌발 사태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작동할 준비가 된 곳입니다. 아주머니는 배가 아파서 들어오셨지만 어떤 환자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구급차에 실려서 들어오기도 합니다. 응급실은 그런 사람을 살려내기도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며 특별 훈련을 받은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싸다 비싸다 돈으로 따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아주머니는 나의 준비된 설명에 더 따지고 들어 봤자 이익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아요? 돈이 없는데….” 


처음부터 그런 사정을 말하면 저소득층이 받는 혜택에서부터 청구서 감면의 길을 찾아보면 된다. 정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몇 마디 해 보면 알게 된다. 그러나 또 많은 사람이 병원비를 따지고 화를 내서 해결하려고도 하는데 이 방법을 쓰면 결국 손해를 보게 된다. 단지 몹시 가난한 사람은 체리티 케어(Charity Care : 뉴저지주 정부에서 시행하는 제도. 의료 보험이 없거나 저소득 의료혜택 등을 받을 수 없는 자에게 제공하는 건강 프로그램이다)나 메디케이드(Medicaid : 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로 해결이 되는데 덜 가난한 사람, 그러니까 빈곤의 문턱을 겨우 넘었으나 비싼 의료 보험은 꿈도 못 꾸는 부류의 사람들은 일단 병원 청구서를 받으면 지불할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나는 어느 시대가 되든 미국에 의료 보험 개혁은 필요하고 또 절대적으로 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혜택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제외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병원비를 염려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머리로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이 문제의 해답이 나와야만 한다. 


아주머니는 몇 개씩 받은 청구서가 사실은 두 곳에서 보낸 것이고 한국인 프로그램에서 적용하는 디스카운트 가격으로 해결해 준다는 내 설명을 듣고 마음이 놓인 듯 돌아갔다. 이분은 조그만 잡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짭짤한 수입이 있고 자신의 은행 계좌에 가게 출입금 내역이 기록되어있는 터라 저소득층이 받는 혜택은 받을 수 없다. 건강 보험료가 부담돼서 보험을 못 들어도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전문의를 택해 건강을 체크해 왔었더라면, 보험료보다는 훨씬 쌀 테니까 이렇게 배가 아프다고 응급실에 들어와 큰 지출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종합병원 응급실은 사용료가 비싸다. 구급차에 실려서 왔을 때는 구급차 청구서가 따로 나간다. 그리고 구급차 사용료에는 디스카운트가 없다. 전액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물론 지나온 일이니까 쉽게 말하는 거겠지만, 비싼 보험을 들지 않고 살다가 병원에 들어오면 몇 달 치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는 셈이라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싸게 먹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나의 남편은 자동차 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하듯 병원 보험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여서 결혼 이후 자영업을 하며 힘들었을 때도 맛있는 것은 못 사 먹어도 한결같이 병원 보험은 들고 있어서 그동안의 보험료가 계산해보면 수십만 달러는 될 터였다. 병원에 갈 일이 없이 살았던 것이 감사할 일인데도 그 돈을 제대로 멋지게 한번 써보지 못한 것이 억울한 것이다. 병원 보험료 낸 것이 아까워 노상 병원 드나들며 째고 꿰매고 하며 살았다면 신났을 일도 아닐 터인데도 말이다. 


꼭 한 번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길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다. 응급실에 실려 가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를 받았는데 보험료가 아까워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치료가 끝난 지 3개월 후에 420달러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내가 매달 내는 보험료가 얼만데 420달러를 내라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청구서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이후로도 그런 청구서가 몇 번 왔는데 아무에게도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했다. 무언가 잘못됐나 본데 저희 잘못을 알겠지, 그러다 보면 잘 해결될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이었다. 내가 거래하던 은행에서 이상한 통지가 왔다. 몇 군데 내가 지불하던 수표가 잔고 부족으로 일부 부도처리가 되고 거기에 벌금이 붙고 붉은 줄이 쳐진 편지가 동봉돼서 온 것이다. 은행에 달려가 알아보니 그 420달러짜리 벌금이 1,000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퉁퉁 부어올라서 은행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거기에 벌금이 붙고, 또 이자가 붙었다는데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 알았지만,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던 통지서 중에는 법원에 출두하라는 출두 명령서가 있었던 것이다. 재활 치료원에서 보험 회사에 청구한 금액을 안 보내니까 내게 청구서를 보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돈도 안 내고 아무 연락도 안 하니까 고소를 했던 것이다. 고소장을 접수한 법원에서는 내게 출두 명령 통지를 내렸는데 나는 그걸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으니 내 은행 잔고에서 420달러 원금과 거기에 벌금, 이자 등등 이것저것을 잔뜩 붙여서 차압해버린 것이다. 평소에 은행 잔고가 두둑했으면 또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얄팍한 잔고에서 거금(?)을 사전 통고(?)도 없이 빼가고 보니 그것도 모르고 이것저것에(그때는 카드를 긋는 시절이 아니었다) 쓴 수표가 그냥 부도가 나버린 것이다. 보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420달러짜리 청구서를 받게 된 이유는 알고 보니 내 보험으로는 재활 치료가 열두 번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내가 열여섯 번의 재활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알았으면 애초에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다 주면 해결되었을 것을 내 생각대로 무시해버리다가 어디에 하소연도 못 하고 이렇게 호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재산 손실은 물론 정신적 피해를 보니 병원 보험이라는 것에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물론 나는 이제 메디케어(medicare : 미국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의 혜택 안에 있으니 상관없지만, 의료 개혁은 필요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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