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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y 09. 2022

세월이라는 그림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은 구두 몇 켤레가 몇 년 동안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신발장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높은 구두를 신고 어디를 쫓아다녔을까? 그중에는 한동안 신어서 낡아 보이고, 돌에 차여 벗겨진 자국들과 때 묻어 볼품없는 것, 어쩌다 들른 백화점에서 왕창 세일하는 통에 욕심이 나서 그냥 사다가 놓았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들, 신고 갈만한 곳이 없어 신어 보지도 못한 것들, 다양하기 그지없다.


이 구두들이 신발장 속에 얌전히 진열된 것을 보면 언젠가 또 기회가 오면 꺼내 신을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구두들을 보면 도무지 낯선 게, 모양새나 뒷굽의 높음으로 보아 새것을 그냥 얻어 가진다고 해도 신고 돌아다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두고 기회가 오면 신겠다던 계획이 현실성이 없어진 것은 보기만 해도 엄두가 안 날 만큼 그 구두 주인은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오래전 친지의 집 거실에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점점이 흰 구름이 떠 있는 드높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 전선에 낡은 운동화가 아무렇게나 걸려서 늘어져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시선을 끈 것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유명 화가의 복사한 그림이거나 비슷비슷한 동양화들이 아닌 데다가 그림 밑에 “자유”라는 특이한 제목이 붙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선에 걸려 있는 낡은 운동화 한 켤레와 “자유”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운동화 자체가 자유를 느꼈다는 3차원적인 착상인가…. “자유”라는 제목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것인지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유”라는 제목이 떠올랐는지 내 수준으로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 그림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나에게 그 집주인의 설명이 있었다. 대단히 유명한 현대 화가의 전람회에서 거금을 주고 구입했음을 밝힌 후, 현대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학생이 분명한 운동화 주인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그 자유스러움을 하늘을 향해 운동화를 벗어던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화가는 우연히 한 여름날 전선에 매달린 운동화를 보고 거기서 신발을 벗어던지는 젊은이의 자유스러움을 표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우연이 아니어도 전선에 운동화가 걸려있는 것을 이따금 발견하곤 했다. 그리고 아무리 예술가 흉내를 내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전혀 자유라는 제목과 연결되지 않곤 했다. 예술가들의 생각이야 제멋대로라고는 하지만 알 길이 없다. 그러면 내 생활 속 한 편씩 찍히는 그림들은 어떤 제목이 되어 나타날까….

낡은, 매달린 운동화 짝을 자유로 표현한 그 화가가 내 신발장의 먼지를 쓰고 다시 신겨질 날을 기다리는, 유행 지난 낡은 뾰족구두를 보면 무슨 제목으로 그릴 것인가…. 예술가에게도 아마 “세월”이라는 이름이 마땅하다고 떠올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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