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아버지는 수험생활이 길어지고 있는 동생이 혹시나 노이로제(요즘 시대 표현으로는 신경증 혹은 정신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다. 조금이라도 전화를 안 받으면 ‘어디서 울고 있는 건 아니냐.’면서 내게 전화를 해서 걱정하고, 어디 있냐 물어 ’ 공부하러 갔다.‘고 하면 ’ 그러다 미쳐뿌는 거 아니가! 그냥 적당히 살면 될 것을!’ 하며 노심초사하신다. ‘에이, 괜찮아.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게~’
할아버지가 이렇게 동생을 걱정하는 건 아빠라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장남으로써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아 왔다. 할아버지는 둘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지원받지 못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설움이 컸고, 자식들에게는 어떻게든 끝까지 교육을 시키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그 열성에 아빠는 중학생 때부터 읍내에서 자취를 하는 등 그 시기에는 돈이 꽤 들었을 법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아빠는 학업을 잘하지 못했고, ‘육사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대구에 나가 재수까지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학력고사 날 도시락을 싸서 시험장 앞에서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가 오지 않자 친구들을 수소문하여 대구 시내를 뒤져 아빠를 찾아가게 된다. 할아버지가 아빠를 맞닥트린 곳은 한 호프집. 아빠가 맥주를 서빙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는 허망함에 말도 없이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생맥주컵 두 개를 들고 가고 있더라. 그때 딱 포기해뿠다.’ 나는 그 사건을 이야기하던 날의 할아버지가 짓던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없이 쌓아 올린 기대와 애정, 그로 비롯된 눈물 젖은 희생,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좌절되었을 때의 절망감. 많은 세월이 지났기에 아무리 담담하게 이야기하려 해도 할아버지의 상처는 여전히 쓰라려 보였다.
그 뒤로 아빠는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할아버지는 항상 돈을 내고 아빠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었다. 술집에서 여자 손님들을 폭행하여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하고, 방위로 간 군대에서 동기, 후임, 선임 가리지 않고 폭행해서 동네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한 번은 군대 후임을 때리다 후임이 뒤로 넘어져 머리가 깨졌는데, 할아버지는 그때 그 사람이 죽을까 봐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아휴, 그 사람이 안 죽어서 다행이지. 그렇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다.’ 새엄마는 결혼 후 동네 사람들에게 아빠가 군대에서 했던 행적들을 듣고 ’ 너희 아빠한테 맞은 사람이 많더라.‘라고 얘기해준 적이 있다.
아빠는 군대 밖에서도 남들 위에 군림하려 했다. 한날 아빠가 자신을 자랑하면서 ‘내가 27살 때부터 사업을 했잖아. 그래서 나는 어린데도 김 사장~ 김 사장~ 소리를 들었다니까~’ 한 적이 있다. 어린 나는 속으로 다 망했으면서 사장 소리 듣는다고 좋아하는 아빠가 한심했다. 결과보다 그 위치가 좋았던 거다. 아빠는 그렇게 나르시시스트의 삶을 살았다. 거짓된 자기로 점철된 삶. 그 거짓된 우월자기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두 번째 이혼을 하면서 아빠는 많이 바뀌었다. 분노조절이 되지 않던 아빠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실패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삶을 꾸려나가려는 듯했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막내 삼촌을 보고 난 뒤 아빠가 내게 한 말이 있다. ‘무진아, 나는 객기와 패기를 구분하지 못했어. 그래서 실패한 거야. 나는 그걸 이제 깨달았는데, 막내는 아직 못 깨달은 것 같다.‘ 이 대사를 덤덤히 뱉던 아빠를 잊지 못한다. 아빠가 드디어 변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던 날.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희망을 가져보고 싶었던 날.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였던 아빠가 우월자기를 버리고 비참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참한 자신이 될 때 아빠는 술을 마셨겠지. 상담 선생님은 알코올 중독을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 자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술을 마시면 ’ 자기‘가 느껴지기 때문에 술을 계속 마시는 거예요. “ 아빠는 술을 마시며 우월한 자기를 느꼈던 걸까? 자기로 텅 빈 느낌은 무엇이고 텅 빈 자기를 술로 가득 채우는 건 어떤 느낌일까.
최근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었고 자신도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 선생님이 말하길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부모가 알코올 중독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어릴 적 얘기를 들어보면,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술만 마시면 싸우는 게 싫어서 술독을 몰래 깨고 다녔다고 한다. 술 마시지 말라고. 그 말을 하는 할아버지는 순간 5살의 얼굴이 되어 상처받고 불안하지만 술독을 깨는 순수한 아이의 표정을 짓는다. 나도 아빠 몰래 술을 싱크대에 많이 부었었기에 할아버지의 감정이 공감되었다.
구박했던 할아버지가 커서 자식들 중에 가장 성공하자 고조모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할아버지는 고조모가 술 마시는 게 너무 싫어서 자주 화냈는데, 술을 한 번만 더 마시면 지원을 안 해주겠다고 어름장도 놓았다. 그럼에도 고조모는 술을 끊을 수가 없었고 밭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할아버지가 보이면 몸 뒤에 술을 숨기고 술을 안 마시는 척을 했다고.
그랬던 할아버지가 또 알코올 중독인 아들을 돌보게 되다니. 할아버지는 아빠의 연이은 실패, 그러니까 사업도, 일도, 사랑도 실패하고 그 상처에서 극복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여파에 상처받은 나와 동생을 볼 때면 아빠의 삶을 되풀이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게 되는 거겠지.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덜 상처받고, 덜 아프고, 더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매번 절절하게 느껴져.
나는 왜 알코올 중독이 되지 않았을까. 상담 선생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지극정성 어린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맞아. 나는 그런 사랑을 받았고, 내 안에 있고, 그것으로 버틴다. 내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던 조부모가 왜 아빠에게는 좋은 부모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그래서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라서, 아빠에게 자신이 받지 못한 최고의 지원인 금전적인 지원과 학업 지원을 해주면 다 만족될 거라 여겼겠지만, 물질이 아닌 사랑을 원한 아빠의 마음엔 큰 구멍이 생겨버렸던 거야. 그 구멍을 이제야 깨달은 할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겐 그런 구멍이 생기지 않게 지극 정성으로 사랑을 나눠주는 건가 봐. 우리에게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삶이 조금은 덜 비극적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