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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연재 Oct 25. 2021

근자감의 이름으로

호호야, 너에게 응원을 보낸다.


"너는 XX 대학 00 전공을 하고 XX시험을 보고 XX 지역에 부임해서 봉사를 한 뒤 XX당에 공천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되면 된다."


아버지가 틈만 나면 고등학생이던 내게 읊조리던 말씀이다. 사실 그땐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몰랐다. 말씀이 시작되면 뭐라고 대꾸할 수 없으니 그냥 그러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막상 나도 두 아들을 키우면서 보니 아버지 왜 그리 말씀하셨는지 조금이나마 가늠이 된다. 그랬다. 아버지는 바로 옆에서 자라나는 아들을 보면서, 또 당신이 걸어오신 인생길을 비추어 자식의 적성에 가장 잘 맞으리라 생각되는 진로를 이미 결정하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제 반백을 맞는 내 인생은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부터 아버지의 희망을 저버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고 대단히 행복하다. 적어도 걸어온 길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만족하며 늘 기대가 된다.


"너 공부하고 일하는 스타일보니 국회의원이 딱이다." 웃기지만 이 말을 나이가 한참 든 후에 타인에게 한번 더 들었다. 40대의 뒤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연구 결과를 논의하면서 지도교수님이 이 말을 던진 것이다. '뭐래' 속으로 피식 웃어넘겼지만, 어릴 적 아버지가 늘 해 주던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 내가 그렇게 보이나?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그런 일 할 사람으로 보이나?' 잠시나마 나란 사람이 실제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우연한 해프닝으로 다시 한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아들이 둘 있다. 우애 좋게 지내라고 돌림자로 가운데 호(昊)자를 넣어 두었다. 나는 남매여서 돌림자를 쓰지 않았는데, 돌림자를 가진 친구들이 가끔 부러웠다. 아들 둘은 1년 반 차이로 태어나 나이로는 2살 차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연년생 형제이다. 같은 부모에서 나왔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른가 할 정도로 성격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그래도 돌림자 쓴 노력과 내 바람이 있어서인지, 다행인 건 형제라 그런지 서로 좀 닮았다고 생각은 하는 것 같다.^^


이제 두 아들을 20살의 어엿한 청년으로 키우고 보니 불현듯 아버지가 내가 어릴 적 해 주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왜 내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을까? 나는 아버지처럼 단정적이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전공, 대학원 진학, 그리고 진출할 전문 분야에 대해서 두 아들에게 넌지시 가끔 얘기한다. 사실 두 놈이 얼마나 내 말을 새겨듣는지는 모르겠다. 경상도 출신 아버지와 갓 20살 청년이 된 아들의 살뜰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그때의 아버지처럼 나 또한 그 나이가 되어 두 아들놈에게 오지랖 넓게 인생 진로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 이렇게 되는구나'


"00아, 넌 말이야. 아빠가 태몽을 꿨는데..., 정말 대단했어. 아빠 고향이 영덕이잖아. 동해 바다는 멀리 나가면 굉장히 깊거든, 깊으면 나중에서 물속 색깔이 검푸르게 보여. 그런데 말이야, 그 깊은 동해 물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 스멀스멀한 기다란 무언가가 지나가는 듯한 빛이 보이는 거야. 그럴 때 있잖아, 먼동이 틀 때 저 멀리 바다를 보면 바다 위에 옅은 햇살이 고기비늘처럼 반사되는 모습 말이야. 아무튼 그러다가 그 빛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더 강해지는 거야. 그러더니 동해 바다가 절벽처럼 쩍 갈라지더니 그 불덩이가 쏴악 하고 하늘로 솟구치는 거야. 그게 물속 깊은 곳에 있던 태양이었나 봐. 그 태양이 동해 바다를 쫘악하고 비치니까 암흑천지에다 춥디 추운 바다 전체가 대낮같이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거야. 그러더니 그 태양이 더 높이 솟아 올라서 동해 바다 위를 잠시 머물다 날아가더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야. 이게 뭐냐고? 바로 너 태몽이야. 봤지, 00아, 그래서 넌 무조건 잘될 거야."


둘째 아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멀뚱 거리며 자신의 태몽 이야기를 처음인양 신기한 듯 듣는다. "진짜?" "당연하지 너는 이 지구 전체에 따뜻하고 찬란한 빛을 주는 태양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자신의 태몽이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둘째 놈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새삼스럽게 다 큰 아들놈에게 이런 태몽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렇다. 같은 배에서 난 자식이라도 성격이 정말 다른다. 첫째 놈은 누구보다고 털털하고 작은 일에는 신경 안 쓰는 타입인 반면, 둘째 놈은 운동선수로 치면 징크스도 많고 입도 짧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다. 사실 뭐 사람의 성격이야 제각각이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 놈의 이런 성격이 마침내 일생일대의 사단을 내고 말았으니, 그게 바로 수능 당일이었다.


첫 교시인 국어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시험감독관이 빨리 조치를 취해주지 않아 무려 30분간을 비몽사몽 헤매면서 시험을 봤다는 것이다. 당연히 원했던 성적이 나올 리 만무했다. 어렵사리 재수를 결심했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올해는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 태몽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실질적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작은 위안이나마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신경 쓰느라 지사제며 수능 전날 과민 증상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현재 진행 중인 것 같다. 올해는 꼭 우리 둘째 놈이 후회 없이 자신이 준비하고 노력한 모든 것을 수능시험에  쏟아내고 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어~' 한 것만 같은 짧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반백의 나이가 되었다. 이 글 서두에서는 아버지의 나에 대한 꿈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어머니인데, 울 어머니는 늘 내게 이렇게 말했다. "걱정마라, 너는 큰 일 할 거고 어딜 가도 잘 살 거다. 그리고, 사주에 귀인이 들어서 어디 가도 귀여움 받을 거다."


첨단 과학 시대에 살면서 태몽이니, 사주니,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를 굳이 다른 의도가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 심하면 당연 문제겠지만, 크게 해롭지 않으면 믿어도 나는 당연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그러면 요샛말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 근자감이 결국 사람을 바꾸기 때문이다. 50년 세상을 살아보니, 삶의 저변을 흐르는 자신만의 믿음 또는 근자감, 그런 게 꼭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 세상은 진정으로 그렇게 믿고 상상하는 데로 이루어지니까!


내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들을 TV나 다양한 매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기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뿐이기만 한가? 아니다. 납득할 수 없는 근자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사실 상당수이다. 아, 설마 저 정도의 사람이. 관점을 달리하면 이해 못할 사람들이 예상 밖의 자리를 차지하고 조화로운 듯 사는 게 인생이다.


나는 AI 전문 회사를 운영한다. 사업을 하면서 1년에 대략 50명가량 인터뷰를 한다. 벤처나 중소기업은 아직 인사시스템이나 관리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을 최선을 다해 인터뷰하려고 한다. 대략 1명당 1시간 30분 정도를 할애하여 면접을 본다. 무슨 공부를 했고, 관심을 무엇이고, 어떤 생각으로 인생길을 걸어왔으며, 앞으로 무얼 꿈꾸는지 등등 이 피 인터뷰자가 정말로 우리 회사에 핏(fit)한 사람일지를 짧은 시간에 알아내려고 각고의 노력한다. 말투, 눈짓, 손동작, 목소리 등 피 인터뷰자의 몸에서 발현되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입사 지원자 입장에서 보면 회사에서 채용담당자는 인터뷰에서 능력을 중심으로 본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적정 능력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격일 뿐이며, 면접자 입장에서 보면,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원자의 삶에 대한 태도, 꿈, 자신만의 가치관, 당당함, 사고방식 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대략 20~30분 진행하면 지원자의 그런 모습이 보인다. '아, 이 친구는 잘 자랐구나. 앞으로도 잘 되겠는데. 가능성이 있어.' 이런 확신이 나도 모르게 들 게 된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어쩔 때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20대 지원자를 만나기도 한다.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의 업적을 이루었을 경우, 이런 당돌함에 자신감이 얹히고, 거기에 근자감까지 더해지면 때론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꼭 잡아야 하는데, 이 놈 머리가 너무 컸구나' 이런 친구를 한번 만나고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이 희망이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요새 20대 청년들이 살기 어렵다고 한다. 20대 청년 두 아들을 키우고, 회사 조직원의 80%가 30대인 우리 회사 직원들만 봐도, 한국의 젊은이들의 현실에 나는 백분 공감한다. 아프면 청춘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분노하고 질풍노도처럼 달려야 청춘 아닌가? 아무튼, 두서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내 아들 또래 젊은 친구들에게 그때의 내 아버지처럼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자신만의 근자감을 가지라고.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라고. 애걸복걸한다고 인생길이 절대 열리지 않는다. 이건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물론 간절해야 하고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 기본이 되었다면 다음에는 마치 태산처럼 주변의 어떤 미동이나 소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근자감으로 무장하고 자신을 깎고 다듬어 만들어야 한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이 그렇게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이제 글을 정리하고 접으려니 옆에 똬리를 튼 우리 무서운(?) 아내가 한마디 건넨다. "그거 알아, 나는 말이야. 돼지 해에, 돼지 월에, 돼지 일에, 돼지 시에 태어난 사람이야. 그래서 평생 부자로 산데. 우리 엄마가 그랬어." 얼마나 좋은가? 저런 근자감. 호호(昊昊)도 엄마의 저런 근자감을 배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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