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Jan 27. 2022

나르시시스트를 이기는 방법

애석하게도 나르시시스트를 상대로 말싸움을 해서 이기는 방법은 없다. 당신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냥 손 털고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영어권에 있는데 거기 유튜버들 조차도 낚시질한답시고 나르시시스트를 조련하는 방법 뭐 이런 식의 영상을 올린다. 근데 결론적으로는 그런 사람들과 수십 년 살면서 속내까지 파악하면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살 필요를 못 느끼게 될것이다. 조련을 하면서 까지 곁에 두기엔 이들은 사람들에게 너무 기생충처럼 의존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말싸움을 ‘이긴’ 다는 것은 상대방을 굴복시킨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를 상대로 언쟁을 한다는 것은 벽에 대고 소리 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뭔가 말이 통해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해야 타격감을 줄텐데 그들은 상대방의 말을 담아두질 않는다.


그들이 싸우면서 늘어놓는 것들은 주로 다음과 같다.

- 기억도 안나는 시절의 상대방의 과거 언행, 행적

- 상대방이 뿜어내는 감정들을 죄악시 여기고 나약하다며 비꼰다

- 자기 말만 우선이기에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할지언정 상대방 말 끊기

- 나르시시스트 본인의 근본적인 문제를 상대방에게 떠넘김 (결혼 후에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네 탓이야)

- 타인과 비교하면서 깎아내리기.


이들은 이걸 무한 루프로 반복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남의 말을 담아 두고 곱씹는 행위로 인해 (지금 얘가 나한테 뭐라고 한 거지? 식으로 보통 속으로 되뇌는 행위) 감정적 손상을 입지 않기 때문에 체력만 따라 준다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논리적 반박도 이들에겐 안 통한다. 애초에 싸울 때 이들은 자신의 내러티브에만 심취해있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대부분 질려서 두 손 두 발 다 든다. 나르시시스트가 언쟁에서 이기는 건 정곡을 찌리는 쨉 한방을 날려서 KO승을 거두는 게 아니라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힘 빠지게 만들어서 거두는 승리인 것이다.


이미 당신이 가진 힘, 재력 그리고 명예가 나르시시스트에 비해 월등히 높다면 애초에 싸움이 날 이유가 없다. 당신이 월등히 잘 나가면 그냥 바짝 엎드려 간신처럼 끽소리도 안 내고 주위를 맴돌거나 아예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


그냥 비등비등한 입장에서 가족 사이로, 부부 사이로, 직장 동료, 학교 친구 사이로 싸움이 벌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싸움에선 나르시시스트들은 기세가 등등해진다.


후퇴를 한다고 해서 당신의 힘이나 지혜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세상을 덜 겪어봐서도 아니다. 문제는 나르시시스트들한테 있는것이다. 일단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다. 그렇기에 남을 공감하는것에 어려움을 겪고 삶의 지혜의 기반인 자기 성찰도 못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르시시즘은 감수성의 결핍, 그리고 자아 성장에 있어 큰 갭이 있는 상태로 이해를 한다.


당신이 절망하고 좌절하고 추억에 잠겨 그리움을 느끼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경이로움에 빠져 감탄하고 만족과 평안함을 느끼고 이런 오만 가지 감정을 다 헤아려 삶을 고차원적으로 살아갈 때 이들은 몇가지 감정만 아주 단순한 패턴으로 느끼면서 살아간다. 일반적인 사람이 왜 나쁜일이 생길때 그렇게 아파하는지 나르시시스트로썬 도통 겪어볼 수가 없으니 그런 감정을 무시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


알파벳이 26자인데 이중 고작 5개 아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논쟁 안에서도 격해지는 감정 또한 피해 갈 수 없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감정적 소통이 불가능 한 사람하고는 그렇기에 싸워서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봐서 이들을 이기는 방법은 있다. 바로 손절하고 잠수 타는 것.


아이러니 하지만 제일 강력한 방법이다. 당신이 나르시시스트의 A급 서플라이라면 (남편, 자녀, 형제, 친한 친구) 더더욱이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나르시시스트들 또한 엄청난 정서적 결핍에 시달린다. 어려서 못 받은 mirroring (부모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만사 다 케어를 해주고서도 ‘우쭈쭈’해주는 상황) 때문이라는 게 유력하다. 사람마다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얼마만큼이 적당한 미러링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뇌에 미러링 뉴런이 결핍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배가 고픈 갓난아기처럼 남들이 자신의 정서적 니즈를 알아차리고 보살펴주길 바라는데 문제는 그들이 그 갓난아기의 상태에서 평생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이다. 밀접한 A급 서플라이에게 있어 이건 단순히 나르시시스트에게 칭송, 찬양을 해주는 거보단 모든 면에서 수족이 되어주길 원하는 거다.


서플라이가 하는 역할은 의외로 복잡하다. 동등한 관계로써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 칭송하는 관객의 역할, 독재자 아래 충성하는 시민, 마음껏 바늘로 쑤셔댈 수 있는 저주인형, 아픈 이를 돌봐주는 나이팅게일등등. 이렇게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착취를 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정서적인 양분을 대거 빨아먹고 사회에서 친하지 않거나 일면식도 없는 인물들을 깎아내리면서 이차적으로 양분을 얻는다.


그들은 이 미러링을 해줄 사람이 사라지면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힌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있어 이것만큼 심한 데미지가 없다. 백날을 싸운답시고 나르시시스트를 앞에 두고 오만가지 쌍욕을 퍼부어도 아예 대화를 단절하고 사라지는 것 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이들과 싸워서 못 이긴다고 서러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보통 사람이 싸우듯 이들과 싸우는 거 자체가 잘못된 방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르시시스트와 범법행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