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가 하는 미러링
앰버 허드와 조니 뎁 법정 공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앰버 허드가 수년간 조니 뎁을 가정 폭력범으로 몰아세웠는데 이번에 그것이 꾸며낸 것이라는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기이한 의상 초이스 또한 기사화되었다. 조니 뎁이 회색 정장을 입으면 그다음 날 그녀도 같은 색 정장을 입고 나타나고 똑같은 디올 넥타이를 어떻게 구해왔는지 그다음 날 똑같이 입고 나오고 머리를 묶고 나오면 그다음 날 더 높이 묶고 나온다.
같은 동성 친구 사이에선 닮아지고 싶어서 같은 옷을 입을 수 있다지만 원수 지간인 전 남편을 왜 따라 할까.
보통 이렇게 수년간 이혼 관련 소송을 하면 상대방에 관한 이미지가 더더욱 싫어지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결별 후엔 더 나다운 개성을 찾으려 노력을 하게 된다. 결별 후에 머리를 자른다는 표현이 왜 대중가요 가사가 되겠는가. 연애 중에 잃어버린 나를 되찾겠다는 대표적인 표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위의 행동이 나르시시스트가 하는 미러링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그녀를 나르시시스트라고 단언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방을 조종하고 심리적 압박을 하기 위해 하는 이 따라쟁이 행위를 미러링이라고 할 때 앰버 허드는 정확히 그걸 하고 있다. 심리적 위축 빼곤 다른 논리적인 모티브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 하는 것이 왜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지는가? 이는 아래와 같이 간추릴 수 있다.
첫 번째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모든 것을 다 감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부적인 모든 것을 탐색하고 똑같이 함으로써 ‘넌 절대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과도 같다.
두 번째로는 피해자의 개성을 말살시키고 퇴색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정서적 학대를 논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이 가해자의 인간적 색채를 다 지워 버리는 행동들이다. ‘네가 그렇게 특별한 거 같아?’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어 상대방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피해자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입는 모든 것을 자신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흔한 것으로 끌어내린다.
며칠 간격으로 촘촘히 짜인 법정 출석 시기에 맞춰 같은 브랜드 넥타이까지 구해다 입는 수고는 생각보다 번거롭다. 내일이 2차 변론인데 오늘 본 넥타이 똑같은걸 구해 온다니. 이걸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으로 볼 수 있는가? 할리우드 배우이기 때문에 재력으로 다 커버를 할 수 있다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대방의 개성을 지우고자 하는 병적인 집착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개성을 퇴색시키는데 더 한몫을 하는 것은 따라 할 때 더 좋고 더 크고 더 근사한 것을 사서 뽐내는 것이다.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라고 뽐내는 것은 나르시시스트의 본질적 성향이기도 하지만 이 우월성은 항상 상대적이다. 다이아몬드로 도배가 된 집에서 살아도 그것을 보고 박탈감을 느낄 관중이 없으면 그들은 절망한다. 상대방보다 더 나은 것을 가져 기를 죽여야 이 우월함은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게 질끈 묶은 머리를 견제해서 그보다 더 높은 위치로 묶는 사소한 것이든 아파트 산 형제를 위축시키기 위해 단독주택을 하는 행위이든 간에 말이다.
정서적 학대가 벌어지는 현장에선 어떠한 이성적인 사고가 통하지 않는다. 사실과 현실을 볼 수 있는 통로가 다 닫혀버리고 누가 누구 위에 올라서서 포효를 하는가라는 짐승의 사고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학대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버젓이 행해질 때 피해자에겐 인간처럼 사유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이점에서 참으로 씁쓸함만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