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결핍은 숨기고 싶어도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자아의 상처는 몸짓, 행동의 패턴, 인생의 궤적, 말투, 감정적 한계 이 모든 것을 장악한다. 오히려 본인 빼고 세상 모두가 다 알아차린다고 함이 더 맞는 표현일까.
그 결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가 본인이란 (장)독을 빚을 당시 그 밑바닥을 어떻게 헤집어 놨는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다. 이건 그저 단순한 가정교육의 부재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건강하지 못한 부모 자녀의 관계 속에서 자녀는 평생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자아와의 이질감, 혹은 동조감을 건네받는다.
자녀의 경우 그걸 알아챌 수 있는 단서들이 기억 속에 속속들이 박혀 있는데도 그 퍼즐들을 다 조합했을 때 그려질 잔인한 현실을 직면할 용기기 없어 기억의 파편이 올라올 때마다 항상 기억을 조작하고 우리 집은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며 일종의 정신승리를 한다.
부모가 심어준 결핍은 훗날 자녀에 삶에서 채워도 채워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목표 설정으로 이어진다. 갓난아기부터 그렇게 갈구하던 케어를 못 받아 자라난 자녀는 배우자에게서 부모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원 한다거나. 본인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부모에게 외면당한 것이라며 세상이 자신에게 냉대한 이유도 자신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을 굳힐 수도 있다.
부모라고 해서 지극히 건강한 마인드를 가졌는데 불구하고 자녀를 그렇게 밖에 대하지 못했겠는가? 이들도 결국 과거의 상처받은 자신을 마주할 만한 힘이 없다고 체념하고 자신의 뒤틀린 에고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의 시기마다 장악하게 내버려 둔 그 결과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아를 직면하지 못한 대가로 감정이 항상 이성을 장악하게 되고 그 업을 그대로 자녀에게 건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유전적이라고 칭하기도 불분명한, 마치 풍습 같은 정서적 학대 방임의 되물림이 진행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런 정서적 결핍은 만성적이고 감정적인 고통을 항상 수반하며 인생 전체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삶에서 겪는 슬럼프와는 구분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