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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Sep 29. 2022

수유에서 찾은 보금자리

반지하아닌 반지하같은 1층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신촌은 나에게 낭만을 주었다기 보다 남의 낭만만 지나치게 구경하다 파묻히게 했다. 결국 석달을 채 견디지 못하고 방을 옮기기로 했다.


 사람은 지난 경험을 토대로 다음 계획을 세운다. 극단적으로 번잡한 곳에서 몇 달을 살아보니 ‘이게 사람 사는 데가 아니구나. 낭만은 개나 주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달 나가는 월세도 아깝고 해서 어차피 집에다 돈 좀 주세요 하는 조금이나마 나의 부담 저렴한 전세로 아주 조용한 곳으로 알아 보기로 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동산에 들락거릴 시간이 나질 않았다. 어찌 알게 된 수십만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 거래 카페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중간에 부동산을 끼지 않고 직거래를 하는 커뮤니티였다. 히야 이런 커뮤니티가 다 있다니...정말 서울은 안되는 게 없는 도시구나 했다.


 다행히 직장이 여러 지하철 노선이 겹치는 구간이라 방을 구하기에 조건이 유했다. 새로 들어갈 방은 용한 동네에 지하철역이 너무 멀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상관없었다. 서울에서 조금 발을 비비고 살았다고 아는 지명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 덕에 여기저기를 뒤적거렸다.


 버스를 타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하철로는 웬만한 동네는 갈 수 있게 되었음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틈틈히 부지런히 저렴하고 조용한 전세 집을 검색하던 중 전세 4200정도의 조용하고 지하철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원룸을 수유역 근처에서 발견했다. 사진으로만 봐도 새집증후군 어디다 쓰는거냐 하듯이 오래 보였고 벽지며 장판도 아주 구수한 느낌이 나는 것이 참 사람사는 방 같았다. 무엇보다 가전부터 티비까지 지난 세입자가 몽땅 두고 갈꺼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몸만 쏙 들어가도 당장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 세입자와 약속을 하고 방을 보러갔다. 4호선이라 직장에서 환승없이 한번에 갈 수 있었고 지하철역에서 방까지 소개글에는 걸어서 5분정도 걸린다고 적혀있었는데 내가 걸음이 느려서 그런지 10분 정도 걸렸다.


 방은 1층 이었는데 철문을 열고 들어가 컴컴한 복도를 몇 발 들어가 다시 현관문을 여는 독특한 구조였다. 뭔가 지하는 아닌데 지하에 반쯤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저번 방에 비하면 턱없이 창이 고 컴컴한 복도가 있긴 했지만 방 자체는 넓고 아늑해 보여 나쁘지 않았다. 들어온 반대편으로 1층 주차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현관문이 하나 더 있었다. 여자 혼자 살기에는 좀 위험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남자 혼자 살기도 좀 위험하다. 철 없을 때고 어서 신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급했고 전세도 저렴하고 대충 버틸만 하다 생각이 들어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사를 하는 날이다. 짐이라곤 그 때 마트에서 사온 세간살이 외엔 없었다. 짐을 몽땅 100리터 짜리 쓰레기 봉투 두장에 담아 택시를 불러 수유로 이동했다. 짐이 없으니 이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수유에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새로 얻은 방은 테레비부터 싱크대와 큰 옷장까지 가구와 가전이 충분했고 가까운 곳에 전통시장이 있어서 주말이면 장을 보러다니는 재미도 있었으며 멀지 않은 곳에 낮은 산등성이가 있어서 저녁 먹고 운동삼아 숲 속을 산책하기도 좋았고 집 앞엔 작은 놀이터도 있었다. 티비 소리외엔 적막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하고 아늑한 것이 아주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사람사는 동네에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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