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서 코 베이다.
헬스클럽이 귀신 같이 사라졌다.
서울까지 왔으니 앞의로의 건강한 라이프를 위해 운동 좀 해야겠다 싶어 띄엄띄엄 공놀이만 하던(그나마도 학교 졸업 후엔 하지 않는) 재미 위주의 운동 패턴에서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하고 직장 근처에 있는 24시간 열려 있는 헬스 클럽에 등록을 했다.
헬스장에서 몸 만드는 사람들을 보며 저 단순 무식해 보이는 재미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반복적인 쇠질을 어찌 저래 꾸준히 해 나가나 싶었던 내가 내 발로 헬스장을 찾아 가서 한번에 6개월치를 등록하고 나온 것은 정말 사람일은 장담 하면 안된다는 걸 스스로 깨우치게 해준 일이었다.
몸을 멋지게 만들 생각은 애초부터 추호도 없었거니와 그런 노력을 내 몸에 붙이는 것은 내 몸에게 너무 가혹해 처사로 보였고 사실......그렇게 멋지게 될 자신도 없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무료 3회 PT도 받고 본전 정신에 입각하여 정말 열심히 운동을 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가급적이면 매일 나가서 운동을 했다. 내가 또 작정하면 제대로 본전 뽑는 스타일이라 회식이 끝난 늦은 밤이라도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갔고 약속이 있는 날에도 한 시간이라도 운동을 하고 나갔다. 게다가 친해진 트레이너가 회원들을 상대로 하는 무료 요가 수업에 등 떠밀어 준 덕에 요가도 배우고 내 몸을 위한 알찬 시간들을 보냈다.
안하던 운동을 부지런히도 해서 그런지 살도 빠지는 것 같고 아예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몸도 좋아지는 것 같아 할수록 보람을 좀 느꼈다. 지루하긴 했지만 내 몸의 변화에서 재미를 찾아가기도 하고 러닝머신에 있는 티비를 보면서 지루함을 달래가며 꾸준하게 했다.
어느 덧 6개월이 지나고 등록을 다시 해야할 시기가 다가왔다. 이왕 시작했으니 1년은 해야되겠다 싶어 당연히 재등록을 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는데 때마침 행사 현수막이 걸렸다. 첫음 내가 낸 6개월 등록금보다 무려 10만원이나 쌌다. 마침 내 등록기간과 딱 맞아 떨어진 덕에 나를 위한 이벤트인가 싶을 정도로 개이득이다 하며 행사 끝날 즈음에 재등록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그날도 운동을 끝내고 행사 마감 날짜가 다가와 재등록을 하겠다고 했더니 포스기가 고장나서 현금으로만 된다고 했다. 그럴수가 포스기가 고장이나다니...현수막에 적힌 행사기간은 오늘까지고 어쨌거나 내일부터는 정상 가격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할수 없다하며 현금을 찾아와 등록을 연장했고 어쨌거나 돈 벌었다며 뿌듯한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 헬스장을 찾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마자 보이는 로비를 지나 락커들이 죽 늘어선 복도를 지나 헬스장으로 들어가는 루트였는데 로비에 아무도 없었다. 눈을 돌려 락커 복도를 보니 바닥에 물건들이 마구 널부러져 있고 사람들 몇몇이 허리를 숙인 채 뒤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거...의아해하며 헬스장으로 가보니 그 넓은 헬스장이 텅 비어 있었다. 헬스 기구가 꽉 차있던 공간이 정말 휑하니 비어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귀신 같이 없어 졌다.
뒷통수가 띵 하고 울렸다. 놀랍고 믿기지가 않았다. 그 무겁고도 많은 헬스 기구들이 하룻밤 사이에 게다가 이 높은 데서 마술을 부린 듯 사라졌다. 너무 황당해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복도의 사람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감이 왔다. 그제서야 나도 복도로 가서 뒤적여봤지만 괜찮은 물건은 없었다. 내 락커에 있던 낡은 운동화는 누가 가져가지도 않았고 세면도구도 그대로 있었다.
어제 현금으로 낸 등록금...내 돈....아아......설마 이 사람들이 작정하고 이벤트를 열고 어제까지 걷은 걸로 하룻밤 사이에 튄건가...그 야밤도주 이벤트에 내가 문 닫아 준건가...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헛웃음도 웃음은 웃음인가...하릴 없이 난 그 낡은 운동화와 그나마의 세면 도구를 챙겨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게 바로 서울가면 조심하라고 우리 고향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던 눈 뜨고 코베인다는 것일까...건물을 나와 올려다보니 서울 하늘은 참 깜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