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데이트
어릴 때 장군의 아들이란 영화에서 김두한이 세금 걷으러 왔다며 일본인 세력을 휩쓸고 다녔던 동네가 종로바닥이었다. 그헐게 알게 된 이름이라 그런가 종로라 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인데도 왠지 애국심이 찰랑거리고 낭만이 있는 동네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종로에 발을 디딘 건 낙원상가에 악기를 사러 갔을 때였다. 지방대에 있으면서 굳이 서울까지 왔다갔다 차비에 시간하며 갈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대학 새내기 시절에 선배들 손 잡고 낭만 찾아 기타치러 왔으니 기타 살 때도 낭만 따라 서울 가봐야 한다며 그 어린 대학생들이 기차타고 지하철타고 갔다왔더랬다. 그 때 어디서 먹었는지는 모를 순두부 찌개가 기억난다.
서울에서 살다 보면 종로에 종종 갈 일이 생긴다. 데이트하기도 좋고 사람 만나기도 좋고 혼자 구경하러 다니기도 좋고 머 사러갈 때도 있고...
탑골 공원이라는 역사적이고도 현실적인 공원을 중심으로 그 벽담길 주위에는 사주,팔자를 봐주는 부스가 많다. 벌써 부터 흥미로운 기분이다. 그 옆에는 낙원상가. 이름도 어떻게 낙원이라 지었을까... 그 건물 자체로도 뭔가 분위기를 풍기며 그 주위로도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족발집들이 있다. 나이들어 오랜만에 낙원상가 앞에 섰을 때 뽀짝거리던 대학시절이 생각나며 뭉클하기도 했다.
길을 건너 골목으로 가면 인사동이라는 한글 마을이다. 모든 간판을 한글로 찍어 놓은 게 너무 귀여웠다. 영어 이름의 브랜드들을 커다란 간판에 고집스럽게 한글로 써서 붙여 놓으니 저렇게 귀여울 수 있구나 했다. 게다가 그 곳은 내가 가까이 가보지 못한 미술이나 공예 같은 예술 분야의 성지 같은 느낌이다. 막 들어가 볼 엄두가 안나는 아우라를 풍기는 갤러리를 비롯해서 그 골목엔 추억의 옛날 물건들을 파는 가게나 필구 용품 가게, 전통 찻집뿐 아니라 색다른 테마의 작은 박물관들도 있고 쌈지길이란 아기자기한 느낌의 아울렛 같은 것도 있다. 게다가 일 년 365일 누군가는 한 쪽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다. 전통가옥 느낌의 식당도 많아서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밥 한끼 하면 금방 시간이 간다.
또 반대로 큰 길 건너 반대편엔 대형 어학원이 있다. 참 희한한 광경이다. 한 쪽에선 힘주어 우리 것을 지키려는 한글 동네가 있는데 그 반대편엔 우리나라 최대 외국어학원이 그 동네를 내려다 보듯이 서 있다. 참 재밌는 동네다. 딱히 어학에 관심이 많지 않아서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그 엄청난 규모의 어학원 건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쓸일도 잘 없는 외국어 공부를 좀 하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또 갑자기 귀금속 거리가 나온다. 귀금속 상점이 한 쪽 길에 즐비해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며 한참을 귀금속을 구경할 수 있고 다른 데보단 저렴하게 살 수도 있는 것 같다. 골목으로 어느 동네 말인지 모를 단어를 사용한 극장도 있고 고기집도 많다.
조금만 벗어나면 새해가 종을 치는 종각도 있고 더 내려가면 청계천이 있어 평소엔 산책하고 앉아서 물멍 때리기 좋고 등불 축제도 열리고 연말에는 멋지게 트리 전시도 해준다. 청계천을 따라 유흥거리도 늘어져 있다.
종로에 가면 심심할 게 없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것이 많다. 전통적인 느낌이 있으면서 다양한 재밌는 테마들이 있어 데이트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