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마음을 오래 품고 산다는 건 외롭고 괴롭다.
어떤 고통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몸 안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그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매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살아있다는 사실이 벌처럼 느껴진다.
그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울고 있다.
부모를 잃는다는 건
그냥 그 두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세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다.
엄마 아빠가 죽은 뒤 나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여전히 집에 가고 싶다.
현재 내가 지금 사는 집은 꽤 그럴싸하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구한 집이다.
완전 구축이지만 혼자 살기에 큰집이고, 방도 3개에
거실도 널찍하다.
처음 J를 떠나 이곳에 왔을 때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하기엔 정말 낡아빠진 집에 살았었다.
벽지는 오래된 피부처럼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창문 틈으로는 바람이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스며들었다.
1층집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비가 오면
비가 세어 들어올까 노심초사하고,
바람이 불면 벽이 오래된 숨을 내쉬었다.
그 집은 무너지지 않은 게 아니라,
겨우 버티고 있는 거 같았다.
화장실은 너무나 추웠고, 창문을 열면 바깥이 훤히 보였기 때문에 사생활이라고는 없었다.
여자 혼자 살기엔 너무 위험했다 언제 도둑이나 변태자식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집에 살았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것이다. 자가는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공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집을 돌보는 일이,
결국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누군가 나를 돌봐주지 않는 삶에서는
그런 일들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무너진 세계의 잔해를
하나씩 치우는 일과 비슷했다.
사람 대신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는 일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혔다.
돌아갈 집이 사라진 사람에게는,
지금 있는 곳이 전부이다.
이곳만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나는 이곳을 내 집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집을 꾸미는 동안만큼은,
잃어버린 세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나는 집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나를 조금씩 다시 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아무리 정리해도 치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방은 항상 단정했지만,
내 안의 폐허는 좀처럼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사람의 삶은 방처럼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제는 내 고향이 사라졌다. 명절에도 갈 곳이 없다.
부모가 있는 집이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 데도 돌아갈 곳 없는 나에게 지금 머무는 이곳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겨우 붙잡은 삶의 자리였다.
식물도 하나둘씩 키웠다. 화분을 창가에 두고,
거실에 두고, 안방에 두었다. 카페에서 볼법한
하얀 커튼을 거실에 설치하고, 안방에도 암막커튼을 설치했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Lp장을 샀고,
거실을 꾸몄다. 예쁜 캔들전등도 샀다.
사소한 변화들이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곳이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간다고 느꼈다.
엄마 아빠가 죽은 뒤에도,
20대를 바친 J에게 배신당한 뒤에도,
나의 구원자 K와 슬픈 이별한 후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갔고,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내가 내 의지대로 처음 시작한 것이 집을 꾸미는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삶 속에서도,
적어도 내가 돌아와 기분 좋게 불을 켤 수 있는 곳
하나쯤은 만들고 싶었다.
세상에서 단 한 곳쯤은,
나를 맞이해 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켜면,
적어도 그 빛만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 동안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몸이
잠시 내려앉을 자리.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공간.
나는 그런 집을 꿈꿨다.
살아 있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온기 같은 것들.
이곳에 이사 온 지 약 1년이 넘었다.
가끔은 집이 너무 커서, 이곳에 내가 혼자
살아도 되는 걸까 싶다. 내게는 조금 과한 공간이 아닐까, 괜히 무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고 불을 켜는 순간, 그런 생각은 잠시 멈춘다.
넓은 거실에 고요가 가만히 내려앉아 있고,
아무도 없는 공기가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때 나는 알게 된다.
사람에게도 때로는 이렇게
넓은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내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이 집의 고요함은 내가 버티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여백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비어 있는 공간 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온전한 나의 집은 대체 어디일까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집을 잃은 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곳을 찾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그 질문을 들고 살아간다.
사람은 평생,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한 칸의 자리를 찾으며 살아가는 거 같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집은, 아직 세상 어딘가에 만들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