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천동, 하루가 조용히 내려앉는 곳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

by 박순동

송천동, 하루가 조용히 내려앉는 곳

글. 박순장


송천동.
소나무(松)와 샘(泉)이 많아 이름 붙여진 마을.
북한산 자락 아래 고요하게 자리한 이 동네는

서울 안에서도 유독 천천히 시간이 흐른다.

높은 빌라와 아파트가 마구 들어서는 다른 동네와 달리,
이곳엔 아직도 오래된 단층집이 많다.
담벼락은 낮고, 골목은 좁으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선은 마치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하지만, 그 틈새로 사람들이 산다.
아주 정겹고, 조용하게.

명절이면 고향으로 떠나는 대신
오히려 송천동으로 ‘귀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이 많은 곳이다.
중장년층, 노년층의 삶이 고스란히 눌러앉은 골목들.

빌라 앞에 앉은 노부부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고,
폐지를 모으는 다른 부부는
고장 난 전기제품을 고쳐 다시 팔아보려 한다.
하지만 팔리는 날은 드물다.

나는 그 앞을 지나며

2만 원에 낡은 신일 선풍기 하나를 사드렸다.
그건 단지 선풍기를 산 게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응원한 일이었다.

730번지 골목에는
나무와 씨름하는 할머니가 산다.
“이놈이 길을 막고 있어… 에이그…”
투덜대는 목소리 너머로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가 보인다.
나는 해마다 인사를 건네고,
해마다 얻어먹는다.

조금 더 내려오면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동네 세탁소가 있다.
할아버지는 셀프 세탁기에 밀려
세상이 변해도 묵묵히 옷을 다린다.
그 다리미 끝에서 구겨진 시간이 펴진다.
바로 그게 이 동네의 모습이다.

송천동 거리에는
전선이 하늘을 가린다.
하지만 그 아래로는
숨소리처럼 조용한 삶이 흐른다.

낡은 철문,
창틀에 얹힌 빨간 꽃 화분,
비에 젖은 노란 차선.
작은 교회 간판과
늘 반쯤 열려 있는 가게 천막.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를 안부처럼 바라본다.

도로 건너 송천동 동사무소에선
여전히 비좁은 공간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살뜰히 챙기고,
반찬거리를 들고 나온 아줌마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인사를 놓치지 않는다.

이 동네엔
말없이 웃고, 말없이 걷고,
말없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가끔,
이 골목들을 천천히 걷는다.
세탁소 앞에 멈춰서고,
살구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늦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생각한다.

익숙해서 더 그리운 골목들,

말없이 서로를 기억하는 동네,

이렇게 천천히 살아도 괜찮은 동네가
여기, 송천동에 있다.


250628. 송천동에 살고 있는 순동이의 동네이야기

작가의 이전글나만 알고 싶은 북한산의 숲길 – 이끼가 살아 숨 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