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간
겨울이 끝나가는지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고 있다.
아침에 학교로 가는 길에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또 봄이 오면 벚꽃이 활짝 피겠지? 정말 이쁠 거야 그렇지? 작년에도 정말 이뻤는데”
잠시 생각했다.
“꽃이 피면 하고 싶은 일 있어?”
“음...... 우리 벚꽃 피면 사진 찍을까?”
“그래”
“딸!! 네가 이제 11살이니 저 벚꽃 피는 걸 10번만 더 보면 넌 20살이겠네”
“20살?”
딸아이는 잠시 놀라 하는 듯했다.
“히히히 내가 20살이 되다니”
“어른이 되는 거지?”
“정말 기대된다. 내가 어른이 되는 거”
“엄마도 어릴 때 어른이 되는 게 너무 떨리고 좋았었는데”
“그래?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떨려?”
“글쎄다....”
“난 지금도 너무 떨려~~ 내일 미술시간이거든”
“.........”
“내일 미술시간에 만들기 하거든”
“그래 우리 딸 만들기 잘하니까 기대되겠네”
딸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돌아오는 길
벚꽃 피는걸 10번만 더 보면 나는 50살이 되고 30번만 더 보면
나는 70살이 된다.
딸아이에게도 10번이 아니라 50번만 보면 어찌 되는지 말해 주고 싶었지만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해서 말을 참았다.
해마다 봄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 빛나는 꽃을 볼 때마다 내 빛나는 시간이 지난 간다.
저 벚꽃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시골살이도 딸아이의 나이만큼 지났다.
농사꾼이 “내년에..... 내년에....”하다가 늙는다는 말이 있다.
옆동네 60살 농부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해는 안 되겠고 내년에는 논을 좀 더 해야지.....”
“뭐하러 그래요?”
“올해는 이대로 타작하고 내년에는 돈을 좀 들여서 싹 다 뜯어고치면....”
“지금도 일이 많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더 늘리면 그 많은 일 누가 다 하려고요?”
“그래도 내년에는 제대로 해서 돈을 벌어야지 "
“농사꾼이 내년에 내년에 하다가 죽는대요”
“뭐...!!”
번쩍 화를 내셨다.
“내 나이가 몇인데 요즘 같은 좋은 세상에 벌써 죽기는... 뭐 그런 소릴 해?!!”
“모내기 20번만 더 하시면 80살 이시잖아요 "
"......... "
모두들 다 알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놈은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듯 존재해 천대를 받는다.
하지만 어찌 시간이 공평하던가?
우리 모두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나고 죽는 것도 아닌데
공평하다고 착각한 그 많은 시간이 내게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달라진 삶을 살까?
죽을 날은 앞둔 사람들도 놓치고 만다는 온전한 내 시간.
모내기 마친 반반한 논물 위로 봄 벚꽃잎이 떨어지면
바람 따라 이리저리 논 물 위의 벚꽃잎이 바람을 그린다.
우리 딸아이의 벚꽃과 농부 할아버지의 모내기는 공평한 시간이 아니라 공평한 공간에 있다.
이 불공평한 시간을 대하는 마음 따위를 딸 아이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되는 새벽이다.
그리고 농부 할배 한테는 모내기 40번만 더하면 100살이 된다고 다시 말씀드려야겠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위로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