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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팬더 Feb 01. 2023

시간은 생각보다 비싸구나...

- NH투자증권의 2022년 대한민국 상위 1% 보고서를 통해

 지난번 글에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역시 NH투자증권에서 나온 상위 1% 가구 보고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2022년에 나온 보고서로서 통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본 내용은 2021년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임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이 글은 상위 1% 보고서 자체보다 필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얼렁뚱땅한 결론으로 전개되는 글입니다. 제목으로 낚였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글 초입에 탈출하실 수 있도록 미리 밝혀둡니다.)


https://brunch.co.kr/@d49f624066694e7/53


 2021년 통계 기준으로 순자산 상위 1% 가구의 커트라인은 29억원, 0.5%는 39억원, 0.1%는 77억원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금융 연구기관에서 '부자'의 기준을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고, 이들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 정도로 나와있기 때문에, 가구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럭저럭 아래의 1% 커트라인도 합리적인 통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2020년에서 2021년은 자산 시장의 상승기였기 때문에 커트라인이 전반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역시 동일한 기준으로 2022년 기준의 조사 자료를 내주면 그 변화를 보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상위 1% 가구주 중 90% 이상이 50대 이상입니다. (가장 높은 비중은 60대군요) 70% 정도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2인 가구가 가장 비중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60대면 자녀들이 분가한 경우가 많아 2인 가구 비중이 높게 나온 것이 아닌가 하네요.



 잠시 자료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역시 '중산층'에서 다룬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식과 통계 숫자의 괴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 자료는 중산층에 대한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득이 아닌 자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현실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안도의 한숨은 잠시고... 바로 또 뼈 때리는 아래의 기사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갈 길은 아직 엄청~ 멀어요 ^^) 



 엉성하게라도 재테크의 길을 걷고는 있는데 참 쉬운 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세상일이 그렇겠지만 재테크의 세상 또한 앞이 보이지 않는 숲을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걸어가는 것과 같더군요. 분명히 많이 걸었던 것 같은데 길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습니다. 걷는 것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막상 돌아보면 걷는 힘이 딱히 크게 붙은 것 같지도 않지요.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 보면 그럭저럭 뭔가 쌓여 있기는 한데, 또 들인 노력에 비해서 막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냐고 한다면 또 그것도 아니고... 애매하군요)

(듀스가 부릅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래서 가끔 진지하게 '내가 왜 재테크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가난한 것보다 부유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일반론 말고 진지하게 저에게 돈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요...


 당연히 소중한 아기가 나중에 자신의 꿈을 필 수 있도록 든든한 아빠가 되고 싶고, 소중한 아내를 그녀의 격에 맞게 치장해주고 싶기도 하고요, 헌신과 희생으로 저희를 키워준 양가 부모님의 노후도 조금 더 풍요롭게 하고 싶습니다. 만약 손이 뻗는다면 동생과 처제에게도 든든한 형, 언니가 되어 주고 싶군요.


 그런데 더 이 정도 수준을 넘어서 생각해 보면 막상 돈이 생긴다고 해서 딱히 제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딱히 취미라고 해봤자 책 읽고, 인터넷을 통해 증권사 report나 좋은 글을 읽고, 가끔 이렇게 글이나 끄적이는 정도인데 아시다시피 이런 취미는 딱히 돈이 들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어 그러면 딱히 재테크를 할 필요 없이 회사만 다녀도 되는 것 아닌가? 난 그동안 무엇을 해 온 것인가?)

(듀스가 또다시 부릅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아 성재형)

 (저런 이상한 생각을 빨리 날려버리기 위해) 사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핸드폰 화면을 통해 책을 보는 것보다 책장을 넘기는 감촉을 즐기면서 읽는 것을 즐깁니다. 책이 잔뜩 쌓여있는 장소를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겁습니다. 


 역시 책을 위해서는 책장과 책장을 둘 넓은 공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활 편의성도 포기할 수 없으니 아주 큰 아파트가 필요합니다. (수도권에서 몇 곳 봐둔 곳이 있긴 합니다만...^^;;;)


(참으로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끝인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억지로 욱여넣고, 회사에서 한 손에 샌드위치를, 한 손에 마우스를 잡고 시간을 보내며, 비슷한 단어를 앞에 뒀다 뒤에 뒀다 하면서 몇 번이나 보고서를 만드는 삶에서는 참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내용은 comedy로 받아들여야지 documentary로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그럼 대체 저는 얼마가 필요한 것일까요? 일단 서재를 만들기 위한 넓은 집을 위해서 경기도로 간다고 해도 최소 15억원!+  그리고 은퇴를 위해 최소 [현재 근로소득 *3배의 비근로소득(이자소득, 배당소득, 임대소득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연 3억+ (연 4% 수익률을 가정한다면 80억원!) 결국 상위 0.1% 가구가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버립니다. 


 책 읽고 인터넷에서 글보고 되지 않는 글을 종종 끄적이는 삶은 생각보다 비싼 삶이었군요. 시간의 가치가 이렇게 비싸다면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시간을 사지는 못하고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만족해야겠습니다. 아직은 시간을 쪼개서 여유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100억원을 모으는 것보다는 더 쉬울 것 같으니까요. 그저 아래와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마음을 달래보고자 합니다. 

 로마의 풍자시인인 마르티알리스는 가난해졌습니다. 그를 후원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당하고 그를 탐탁지 않아 하던 네르바 황제가 즉위했기 때문이지요. 그때 그에게 후원자가 나타났습니다. 고향인 에스파냐에서 사업에 성공한 여성 독자가 집과 생활비를 마련해 줄 테니 고향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예술가에게는 꽤나 세련된 프러포즈군요)

 안정적인 삶과 부유한 배우자라는 선물을 받은 시인은 기분 좋게 고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뒤 별다른 작품을 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평온한 시골에서의 생활이 시인의 작가혼을 앗아간 것이지요.

 마르티알리스의 풍자의 원천은 현실의 인생이었습니다. 잡다하고 혼란스럽고, 선도 악도 지나칠 만큼 충분해서 정신없는 대도시 로마에서, 매일의 생계에 쫓기며 살았던 시간이 그를 로마 최고의 풍자 시인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비단 로마 시대의 시인 외에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위대한 예술가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시간이 너무 많은 것보다 시간이 적당히 부족할 때 오히려 걸작을 내었다는 것이 평범한 저에게는 약간의 위안을 주는군요. 


 그리고... 상위 1% 가구도 인적 (근로 or 사업) 소득이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점이 오늘도 떨어지지 않는 발을 끌고 직장으로 출근한 동지분들께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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